‘기발한 뇌물’ 25억 장비로 참기름 짜 돌린 출연기관 전 원장

입력 2015-04-29 16:08
전남도 출연기관인 장성 나노바이오연구원 직원들이 뇌물을 받고 거액을 들여 구매한 첨단 연구장비로는 명절 선물을 만들어 주변에 돌려온 사실이 드러났다. 순수 연구목적으로 사용해야 할 25억원짜리 ‘추출기’로 방앗간 대신 참기름을 짜 설과 추석 때마다 ‘인심’을 써왔다는 것이다.

광주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9일 명절 선물을 만들기 위해 연구비를 유용한 혐의(업무상횡령 등)로 이재의(59·전 광주시장 비서실장) 전 원장과 연구원, 업자 등 2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 전 원장 등은 2011년 8월부터 4년간 연구원에 과학기자재를 납품해온 업자로부터 상납 받은 6200만원 상당의 참깨를 연구장비를 이용해 참기름으로 만들고 대금을 연구비 명목으로 결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매년 명절마다 참기름 300∼500병을 선물세트로 만들어 원장 명의로 연구원 관계자와 지인 150∼200명에게 돌려온 것으로 밝혀졌다. 명절 선물로 사용할 참기름을 짜내기 위해 25억원짜리 초임계 추출기(기체와 액체의 성질을 구분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필요요소를 추출하는 기기)가 매번 가동됐다. 이 전 원장 등은 또 참깨를 상납 받아 놓고도 연구 기자재를 납품받은 것처럼 꾸미기 위해 허위 물품납품계약서까지 작성했다. 참깨 구입비는 이 과정에서 에탄올과 발표주정알코올 등 연구에 필요한 소모품을 사고 지급한 대금으로 둔갑했다.

이 전 원장과 다른 연구원 등은 또 독점 납품계약을 맺는 대가로 업자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전 원장은 2009년 2월부터 2013년 4월까지 자신의 사무실에서 10차례에 걸쳐 연구원 김모(44)씨 등 4명으로부터 21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고교 동창인 업자들로부터 2011년 2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17차례에 걸쳐 22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고 이중 일부를 이 전 원장에게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독점 계약을 주려고 입찰에 참여한 다른 경쟁 업체의 견적서까지 위조했다. 경찰은 납품 계약을 따낸 업자들이 5년간 8억여 원의 기자재를 연구원에 독점 납품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 원장은 2006년 나노바이오연구원 발족 당시부터 원장으로 근무하다가 지난 1월 광주시장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하지만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지난달 23일 사의를 표명했고, 근무 기간 비위행위에 대한 조회 절차를 거쳐 2주일 만인 지난 7일 사표가 수리됐다. 나노바이오연구원은 전남지역에서 생산된 친환경 특산 생물자원을 이용해 의약품, 식품 등을 개발하고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도 출연기관이다.

경찰 관계자는 “전남도 출연기관 직원들의 공금 횡령과 납품비리 등 방만한 운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며 “첨단 연구장비를 활용해 명절 선물용 참기름을 만든 발상이 기발하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