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미국 방문 이틀째인 27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와 워싱턴DC 홀로코스트(대학살) 박물관 등 전쟁 추모시설을 잇따라 방문했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주류 언론 등 각계의 압박에도 끝내 과거 일본의 침략 및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등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그의 행보가 ‘위선’이며 ‘이중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오후 알링턴 국립묘지를 참배한 데 이어 곧바로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찾아 45분간 머물렀다. 아베 총리는 일반인이 입장하는 정·후문이 아니라 외부와의 접근이 차단된 ‘보안문’을 통해 박물관에 입장했으며, 일부 일본 언론 외에는 취재조차도 차단됐다.
아베 총리는 매사추세츠공대(MIT)와 컬럼비아대, 조지타운대에 각각 500만 달러(약 54억원)를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산케이신문이 전했다. 역사인식 문제를 둘러싸고 한·중·일 간의 갈등이 커진 가운데 미국 학계에 지일파를 늘리고 일본에 우호적 여론을 확산시키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그는 지난달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 이어 이날 오전 보스턴 하버드대 공공정책대학원(케네디스쿨) 강연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 피해자’라는 표현을 쓰며 “가슴 아프다”고 말해 마치 위안부 문제가 일본과 무관한 듯한 뉘앙스를 보였다. 이런 아베 총리의 행보는 그가 방문한 홀로코스트 박물관 정문에 걸린 현수막의 ‘네버 어게인(Never Again·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이라는 문구와 묘한 대조를 이뤘다.
백악관의 태도도 우리에게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에반 메데이로스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이날 한·일 과거사 갈등과 관련해 “역사는 역사가 되게 하라(let history be history)”고 말했다. 그는 미·일 정상회담 관련 사전 브리핑에서 “우리는 우방과 동맹들이 건설적이고 솔직한 방법으로 과거사 문제를 다뤄나가는 동시에 치유를 하고 미래를 지향해나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행정부로선 한·일 과거사 갈등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찰스 랭글(민주·뉴욕) 하원의원은 USA투데이 기고문에서 “아베 총리가 미국을 방문한 지금이야말로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때”라고 지적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출신인 랭글 의원은 “역사적인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아베 총리가 단순히 우리의 강한 동맹을 강조할 뿐 아니라 1945년 이전의 치유할 수 없는 피해와 상처를 입은 여성들에 대한 정의도 실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미·일 정상회담] 아베의 이중성…사과는 안 하면서 전쟁 추모시설 잇따라 방문
입력 2015-04-28 21:45 수정 2015-04-28 2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