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한국·중국과 관계 개선을 원한다면서도 과거사에 대한 ‘사죄’는 하지는 않았다. 아베 총리는 26일(현지시간) 미국 동부 보스턴에 도착, 8일간의 미국 공식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아베 총리는 27일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강연 후 종군 위안부 관련 질문에 “인신 매매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고노담화 입장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원한다”고 말했지만 과거사에 대해 사죄 하지 않은 채 ‘깊은 반성(remorse)’이라는 표현을 반복했다.
그는 이어 “중국의 군사주의는 이웃국가들이 우려할만한 일”이라며 중국의 군사력 강화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연이 열린 케네디스쿨 앞에는 일본군 종군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한인 시민단체 회원 등 100여명이 아베 총리의 과거사 사과를 요구하며 침묵시위를 벌였다. 전날 아베 총리는 존 케리 국무장관의 자택에서 만찬을 함께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6일자 사설에서 아베 총리는 일본이 2차 대전 당시 행위를 이미 충분히 사과했다고 여기겠지만 침략자 일본이 사과를 끝내는 시점을 스스로 결정하는 ‘호사’를 누릴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가 ‘정상국가’ 일본에 대한 믿음을 외부세계에 주려면 입술을 깨물고 예전처럼 사과를 또 한 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FT는 또 미·일이 친선관계를 과시하는 것은 옳은 접근방법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미국 측에 “무조건 일본을 지지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신문은 “특히 중국과의 관계에서 그렇다”며 “미국이 중국 봉쇄를 위해 일본을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일본이 합세해 중국에 대항하는 것처럼 비쳐지면 중국은 그들의 ‘합법적 야망’을 달성할 평화적 방법이 없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미 법무부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외국로비정보공개(FARA)’ 자료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난 16일 주미 일본 대사관을 통해 워싱턴DC의 대형 홍보자문회사 ‘대슐 그룹’과 고용 계약을 체결했다.
주미 일본 대사관과 대슐 그룹이 서명한 계약서 상의 고용목적을 보면 대슐 그룹이 일본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정책적 이슈와 관련해 일본 대사관에 자문 및 지원 역할을 해 주는 것으로 명기돼 있다.
일본 정부가 아베 총리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미 연방 하원의원들이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연판장을 돌리는 등 미국 내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가자 본격적인 대응을 위해 홍보회사를 고용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
아베 “한국·중국과 관계개선 원해”… 사죄 언급은 없어
입력 2015-04-27 23:29 수정 2015-04-27 2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