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프로야구에 이어 83년 프로축구가 출범하면서 대한민국은 프로 스포츠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프로구단들은 모기업의 홍보수단 역할을 하는 데 만족해야 했고 늘 적자에 허덕였다. 지금도 매년 팀별로 프로야구는 50억∼250억 원, 프로축구는 100억∼200억 원의 적자를 내면서 ‘돈 먹는 하마’로 남아있다. 최근 프로 스포츠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안팎에서 프로 구단의 수익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시간이 멈춘 것 같네요.”
넥센 히어로즈 팬 남기훈(37)씨는 지난 23일 목동야구장에서 탄식을 뱉었다. 해외지사에서 일하고 2년 만에 찾은 야구장의 허술한 외야 광고 펜스와 전광판 때문이었다.
“놀라워요.”
반면 지난달 31일 직장 동료들과 함께 수원kt위즈파크에 온 직장인 이진영(28)씨는 깔끔한 경기장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펍(pub) 라운지’에서 동료들과 맥주를 즐겼고 무료 와이파이로 타구장 소식을 부담 없이 검색했다.
올해 프로야구 시즌 개막을 한 뒤 일부 구장이 달라진 모습으로 관중을 만나고 있다. 이처럼 야구장에서 남씨와 이씨가 전혀 다른 서비스를 경험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구장 운영 주체가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난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이용욱 사무관은 “구단들은 지자체 시설인 경기장을 단기 임차로 써야 해 제대로 된 마케팅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이 국회에 발의한 스포츠산업진흥법 개정안에는 구단이 직접 구장을 운영하며 새로운 수익을 찾을 수 있도록 최소 25년간 운영권을 주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변화에 나선 구단들=법이 개정되기도 전에 이미 구장에 변화를 주고 있는 구단들이 있다. 한화 이글스와 KIA 타이거즈, SK 와이번스, kt 위즈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달라진 경기장 문화를 눈여겨봤다. 구장이 경기가 열리는 장소에서 나아가 판매와 접객, 문화 시설 등을 도입한 복합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데 주목했다. 지자체로부터 구장 위탁 또는 운영권을 받은 이 구단들은 의자 교체 등을 통해 팬 친화적인 시설들을 대폭 갖췄다.
kt는 야구장 콘셉트를 정보통신기술(ICT)과 엔터테인먼트가 더해진 ‘빅테인먼트’로 잡았다. 외야 전광판 아래엔 펍과 옥상스탠딩석을 넣었고 ICT 회사답게 근거리무선통신(NFC) 등을 이용해 입장할 수 있도록 했다. 좌석으로 음식을 배달해 주는 스마트 오더 시스템도 개발했다.
‘스포테인먼트(스포츠+엔터테인먼트)’라는 단어를 처음 쓰기 시작한 SK도 꾸준히 구장에 변화를 주고 있다. 올해는 40억원 가량 예산을 들여 관중 편의시설을 대대적으로 개선했다. 라이브존으로 이름을 붙인 포수 후면석 등을 신설했다.
2000년부터 위탁 운영을 하고 있는 한화는 매년 구장 시설을 개·보수하고 있다. 특히 2012년부터 팬들을 위한 구장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포수 후면석을 설치하고 외야 펜스를 높였으며 올해는 미니박스를 만들고 응원단석 좌석을 교체했다. 새 경기장에 입주한 KIA도 국내 최초의 개방형 불펜으로 관중들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공 들인 만큼 나온다=구단들은 구장에 공을 들일수록 돈을 벌 수 있다. 관중들이 경기장을 많이 찾으면 입장 수익 외에도 매점 등 부대시설에서 나오는 이익을 챙길 수 있다. 관중이 많은 경기장은 기업들의 광고 유치나 구장 명칭 사용권 판매에도 유리하다.
일단 분위기는 좋다. 한화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세 차례 리모델링을 하면서 관중 증가를 경험했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팬 친화 구장으로 변신시키면서 홈 관중 수가 전년 대비 23%나 늘었다. 한화 구단 관계자는 “프로 스포츠는 성적이 안 좋으면 관중도 줄어든다”면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한화의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구장을 변화시켜 오히려 관중이 늘었다”고 말했다.
달라진 경기장에 기업 유치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kt는 시즌 개막 전 16개의 스카이박스를 기업들에게 모두 팔았다. kt와 SK는 주류 업체와 함께 펍도 운영하고 있다. 기업에게는 프로모션이 되고 구단에게는 팬 서비스가 되는 셈이다.
교체한 전광판도 적극 활용 중이다. 이들 구단은 대각선 길이 21m인 전광판을 30m 이상으로 키웠다. 화질도 달라졌다. 달라진 전광판은 경기 내용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기업 광고판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지자체와 구단의 상생의지가 관건=그렇다면 나머지 6개 구단들은 왜 구장을 적극적으로 바꾸지 않는 걸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하지 않는 게 아니고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4개 구단이 해당 지자체로부터 구장 운영·위탁권을 받은 것과 달리 6개 구단은 사용 권한만 받았기 때문이다. 목동야구장의 경우 넥센은 일일 사용 허가 방식으로 구장을 쓰고 있어 시설 개·보수를 꿈도 꿀 수 없다.
지자체들이 구단에 구장 운영권을 주는 것에 주저하는 데에는 속사정이 있다. 시민 세금으로 만든 구장을 특정 구단에 맡겼다간 특혜 의혹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광주시도 KIA와 25년 장기 임대 계약을 했다가 의혹을 받았고 결국 2년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또 다른 이유는 구장 운영으로 나오는 수익이다. 실제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는 2012년 잠실구장 임차료로 각각 13억 원씩 내는 대신 구장 내 광고권을 서울시에 줬다. 서울시는 그해 잠실구장 광고 수익으로만 72억 원(지난해 103억 원)을 벌어들였다.
구단들도 구단 운영의 시너지 효과가 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kt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구장 내 36개 매점을 수원 소재지 업체로 선정했다. 따라서 구단이 구장을 운영하기 위해선 지자체의 인식 변화와 함께 양측의 상생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스포츠 기획]볼거리·먹거리·놀거리 야구장에 多 있다… 수익구조 개선 나선 구단들
입력 2015-04-27 1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