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서 있는 모든 게 넘어졌어요. 사람들은 물론 텔레비전, 냉장고, 옷장 할 것 없이 순식간에 다 쓰러져 버렸죠.”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홈 낫 바따라이(45·사진)씨는 2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아직 충격이 가라앉지 않은 듯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네팔에서 이렇게 강력한 지진을 경험한 것은 생전 처음”이라고 거듭 말했다.
25일(현지시간) 정오쯤 처음 지진이 시작됐을 때 홈씨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엄청난 진동에 그를 포함한 4명의 직원들 모두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건물이 무너질 듯 흔들리면서 보이는 모든 집기들이 쏟아져 내려 순식간에 사무실은 아수라장이 됐다. 다들 혼비백산해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불안에 떨어야 했다.
건물을 탈출했지만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홈씨는 “뛰쳐나온 이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놀라서 서 있지도 못하고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은 사람들, 두려움에 울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거리에 가득했다”고 덧붙였다.
첫 지진 이후 반나절도 안돼 25차례가 넘는 강한 여진이 계속되면서 카트만두 주민들은 집으로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홈씨는 “지진이 또 다시 나 건물이 무너지고 다칠지 모른다는 생각뿐”이라며 “주민들 대다수가 잠들지 못하고 건물 밖에서 밤을 지샜다”고 말했다. 또 “사람들이 건물 주변이 아닌 안전한 곳으로 몰리면서 마을 공터나 학교 운동장, 공원 등은 이미 만원”이라며 “있을 곳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거리 곳곳에 텐트를 치고 모여앉아 불안에 떨고 있다”고 전했다.
카트만두 주변의 피해가 극심한 데 대해서는 지은 지 오래된 옛날 건물들이 많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홈씨는 “우리 사무실과 주변 건물만 해도 비교적 새 건물이었지만 주변 아파트 외벽마저 깨지고 유리창 대부분이 깨지고 금 갔을 정도로 충격이 심했다”면서 “흙이나 벽돌로 만든 건물들은 거의 다 넘어졌다고 봐야 된다. 특히 사원들이나 카트만두의 ‘랜드마크’인 다라하라(빔센) 타워 등 오래된 유적지들이 무너져 내려 큰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지진 직후에는 흐리고 기상이 좋지 않아 수색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날이 밝으면서 구조 작업은 활기를 띄고 있다고 홈씨는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과 군인, 주민들이 공구를 이용해 잔해를 자르고 치우며 구조에 매진하고 있지만 사건 발생 하루 지나가면서 생존자는 많지 않아 보인다고 안타까워했다.
수도 카트만두를 중심으로 규모 7.8의 지진이 네팔을 강타하면서 사상자가 급격히 불어나고 있다. 지진은 카트만두에서 북서쪽으로 81㎞, 대표적 관광지인 포카라에서는 동쪽으로 68㎞ 떨어진 람중 지역에서 발생했다. 미국 CNN방송은 이번 지진으로 최소 1910명이 사망하고 최소 5000명이 부상당했다고 전했다. 미렌드라 리잘 네팔 정보장관은 사망자 수가 4500명에 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네팔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경과 헬기를 동원해 수색 구조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구조 및 시신 수습이 더디게 진행 중이고 특히 에베레스트 등반을 위한 베이스캠프 지역에 머물던 산악인, 세르파 등 수백명이 눈사태로 매몰된 상황이어서 피해 규모는 계속 커질 전망이다.
네팔 현지에는 우리 국민 650명 정도가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재까지 한국인 사망자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주네팔 한국대사관은 카트만두 북쪽 70㎞에 있는 어퍼 트리슐리 지역에서 일하던 한국인 건설업체 직원 1명이 경미한 부상을 당했다고 밝혔다. 히말라야 등반에 나선 한국 전문산악인들의 피해도 현재로서는 보고 된 바 없다고 대한산악연맹은 전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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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4-26 1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