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는 물속의 인간군상 존재의 의미를 묻다" 강영길 사진작가 가나아트 개인전 5월3일까지

입력 2015-04-24 18:05
물속에서 사람들이 떠 있다. 숨을 쉬는 듯 멈춘 듯 고요한 모습도 있고 허우적거리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모습도 있다. 수영장의 푸른 바닥을 배경으로 붉은 넥타이를 매거나 운동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물속의 인물을 촬영한 이런 사진을 본 적이 있는가. 동서를 막론하고 쉽게 보기 어려운 작업이다.

사진작가 강영길이 4월 23일부터 5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 컨템포러리에서 여는 개인전 ‘고도-깊은 침묵(GODOT-DEEP SILENCE)’에 내놓은 작품들이다. 2년 만에 관객에게 선보이는 그의 신작은 죽음과 인간의 고독, 상실감에 대한 메시지가 더욱 뚜렷해졌다. 강렬한 색채감과 어우러진 오브제가 전시 주제 ‘고도’와 맞닿아 있다.

고도란 무엇인가. 1953년 프랑스 파리에서 초연되었던 사뮤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인간의 실존에 대한 문제를 다루었다. 두 주인공인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한없이 기다리는 고도는 절대로 오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고독하고 상실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래서 베케트는 “신을 찾지 말고 보이는 대로 웃으며 연극을 즐기라”고 관객들에게 얘기했다.

작가의 작품은 어떤가. 물속에 있는 인간군상의 모습에서 고도는 인간에게 희로애락을 안겨주는 과거의 추억을 상징한다. 추억에 대한 회상에 젖고 나면 깊고 긴 침묵에 들어간다. 작가는 말한다. “삶을 물속 상황으로 설정하고, 그 속에서 저항하는 인물의 표정과 몸짓을 통해 문명과 부딪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거대한 고독과 상실을 상징적이고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작들을 11년 전부터 찍어왔다. 광고사진 장소를 물색하러 다니다가 트렁크 수영복을 입고 파란 타일의 풀에서 수영하는 모습을 본 순간 그는 무의식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찍기 시작했다. 강렬한 색의 대비로 인해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발견한 것이다. 이는 그의 전작 ‘바다’와 ‘대나무’ 연작과 통하는 것이었다.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자연 풍경의 바다 작업이나 ‘존재’라는 제목의 대나무 작업이나 삶의 의미를 드러내는 실존 추상표현주의의 색면 회화와 연결된다는 점에서도 이번 작품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존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사진과 회화의 경계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 작품이다. 스타들의 광고 사진 찍기에 몰두하던 작가가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선회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무(無)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죽는 것’이다. 죽음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작가는 “언젠가 무로 돌아가야 한다면, 그것에 대한 사유를 마친 후이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죽음과도 같은 깊은 심연에서 슬며시 새어나오는 빛과 인간의 꿈틀거림은 삶에 대한 열망과 깨우침을 선사하기에 희망적이다(02-720-1020).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