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대전지검장)이 의혹의 실체에 한 발 더 다가서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외부에서 의혹이 쏟아지고 있지만 이를 규명할 ‘비밀장부’ 같은 확실한 물증은 아직 없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핵심 측근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수사팀은 출범 2주째 ‘밑그림’만 그리고 있는 실정이다.
수사팀은 24일 박준호(49) 전 경남기업 상무로부터 성 전 회장의 지시로 비자금 내역을 담은 자료 중 일부를 인멸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인멸된 디지털 자료를 복원하고, 외부로 빼돌려진 자료를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경남기업 내부 자금흐름을 처음부터 다시 쫓는 모양새다. 수사팀 관계자는 이를 두고 “수사가 (금품전달 의혹과 증거인멸 의혹) 두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인멸된 자료는 성 전 회장의 정·관계 로비 내역을 담은 ‘비밀장부’이기보다 경남기업 내부의 비자금 조성 과정과 인출내역 등이 담긴 회계자료일 가능성이 높다. 증거인멸 시점은 경남기업의 해외 자원개발 비리 수사를 전후해서다. 당시엔 성 전 회장이 생존해 있었기 때문에 정·관계 로비 내역이 담긴 비밀장부를 은닉·폐기했을 가능성이 낮다. ‘성완종 리스트’를 폭로하기 전이라 성 전 회장 입장에서 감추고 싶었던 자료는 내부 비리와 관련된 것으로 보는 게 상식적이다. 조사 과정에서 긴급체포된 박 전 상무와 수행비서였던 이용기(43) 경남기업 부장도 “비밀장부의 존재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비밀장부의 존재 가능성이 불투명해지는 만큼 수사팀이 넘어야 할 난관은 많아지고 있다. 공여자가 숨졌다는 치명적 약점을 안고 시작한 수사팀으로서는 인멸자료부터 최대한 신속하게 확보하는 수밖에 없다. 검찰이 2차례 광범위한 압수수색을 진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저인망식으로 주변 정황부터 샅샅이 훑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칸을 채워야 다음 칸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수사팀 관계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사팀이 채워야 할 한 칸이 너무 큰 것이다.
또 인멸된 자료를 추가로 확보한다 해도 자금 조성을 입증하는 수준에 국한된다. 수사팀은 리스트에 등장하는 정치권 인사들에게 돈이 전달된 과정까지 입증해야 한다. 수사팀은 아직 ‘본류’라고 할 수 있는 이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의혹을 부인하는 중이다. 이 와중에 전달 과정에 개입했거나 목격한 핵심 참고인들을 회유했다는 정황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자료 확보·분석에 발이 묶인 수사팀은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1억원을 전달했다는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도 아직 소환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특검론이 불거지는 점도 수사팀에 부담이다. 수사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특검으로 공이 넘어갈 경우 검찰로서는 불명예를 안게 될 수 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비밀장부 없을지도…’ 경남기업서 나간 자금 흐름부터 다시 쫓는 특별수사팀
입력 2015-04-24 1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