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4·29 재·보궐 선거가 가려졌다. 여권 실세들의 비리 의혹이라는 초유의 사건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출마 후보들의 공약과 이력 등을 검증할 기회까지 박탈할 수준으로 여야의 정쟁이 과열됐다는 우려가 높다.
이번 재보선은 당초 박근혜정부 중후반기 국정 주도권의 향배를 결정할 가늠자로 평가됐다. 차기 여야 대권 잠룡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선거전을 지휘하는 ‘맞대결 구도’로도 주목 받았다. 여야는 선거전 초반만 해도 각각 ‘지역 일꾼론’과 ‘유능한 경제정당론’을 전면에 내세우며 정책 대결에 시동을 거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리스트가 폭로된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여야는 ‘성완종 리스트’가 4·29재보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치공학적 계산에만 몰두하는 모습이다.
새누리당은 재보선 선거구 4곳 중 ‘2+α’를 가져갈 수도 있다는 장밋빛 전망과 전패(全敗)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태다. 새누리당은 노무현정부 당시 두 차례 이뤄진 성 전 회장의 특별사면 특혜 의혹을 집중 공략하며 국면 전환을 노리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성완종 후폭풍’이 판세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당 자체 조사 결과 기대만큼 효과를 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정치연합은 투표일을 이틀 앞둔 27일 중남미 순방에서 돌아오는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특별검사 도입 여부에 대해 답을 내놓으라며 여당의 ‘특사 역공’을 거세게 되받아치고 있다.
유권자들은 지역의 후보자를 살피기보다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어느 쪽 편을 들 것이냐는 선택에 몰린 형국이다. 불법 정치자금이라는 문제의 본질은 사라졌고 여야의 ‘남탓하기’ 공방이 재보선의 유일한 이슈가 돼 버렸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4일 “초대형 이슈이기 때문에 영향이 없을 수는 없지만 지역 현안이 뒤로 밀리고 중앙정치 이슈에 과도하게 쏠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성완종 변수’가 여야 어느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여권 인사들의 비리 의혹인 만큼 야권 성향 유권자들의 투표율을 끌어올릴 수 있지만 반대로 보수층의 결집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야당에 유리한 환경이긴 하지만 투표율이 낮은 재보선이라는 점에 비춰 야권 성향을 보이는 20, 30대 투표율을 높이는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며 “재보선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투표율을 보인 50대 이상 여권 성향 유권자의 투표율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번 재보선은 국회의원 선거구 4곳과 광역의회 의원 1곳, 기초의회 의원 7곳 등 12곳에서 치러진다. 24일부터 시작된 사전투표는 25일까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실시된다. 투표장에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여권 등 신분증을 갖고 가면 투표할 수 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이슈분석]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4·29 재보선이 안 보인다
입력 2015-04-24 19:04 수정 2015-04-24 2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