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 日정부 '법적책임'에 대해 유연성 보여야"… 한·일 시민단체 제안

입력 2015-04-23 23:21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정부간 협상이 답보 상태인 가운데 양국의 시민단체들이 논쟁의 핵심인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과 관련한 창의적 절충안을 담은 해결책을 제시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노력해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한일 시민단체 인사들과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 등은 23일 도쿄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일본 정부가 인정할 4가지 항목의 ‘사실’과 그 책임을 제시했다.

4개항은 일본군이 군의 시설로서 위안소를 입안·설치하고, 관리·통제한 사실, 여성들이 본인 의사에 반해 ‘위안부·성노예’가 되어 위안소 등에서 강제적인 상황에 놓인 사실, 피해가 심대했으며 현재도 그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 당시의 국내법 및 국제법에 반하는 중대한 인권 침해였다는 사실 등이다.

이를 바탕으로 정대협 및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에 ‘뒤집을 수 없는 명확하고 공식적인 방법으로 사죄할 것’, ‘사죄의 증표로서 피해자에게 배상할 것’, ‘일본 정부 보유 자료의 전면 공개 등을 통한 진상 규명’, ‘학교교육 및 사회교육과 추도사업 실시 등 재발방지 조치’ 등을 요구한다.

이 방안은 일본 정부의 배상을 먼저 요구했던 1990년대 일본 측이 제시한 아시아여성기금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이다. 아시아여성기금은 민간 모금의 형태를 취한데다 기금의 성격을 배상으로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수의 한국, 대만 피해자로부터 외면당했다.

다만 시민단체 방안은 위법성 인정을 전제로 깔고 있는 배상을 요구하되,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을 요구사항에 명시적으로 포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본 정부가 수용할 수 있도록 장벽을 낮춘 듯한 인상을 준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반복해왔고, 한국 측의 요구 사항 중 ‘법적 책임 인정’에 가장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다. 전후 배상에 대한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일이 되리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결국 이번 시민단체의 제안은 양측의 입장이 가장 첨예하게 부딪히는 법적 책임 인정 문제에서 피해자 측과 일본 정부가 각자 입장대로 해석할 수 있는 모호성을 가진 절충안인 셈이다.

제안에 참여한 양징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일본 시민단체)’ 공동대표는 “법적 책임 인정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한 뒤 “가해국이 과거 군이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인정한다면 그것 자체가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이라며 “배상이라는 말에 (법적책임이) 집약돼 있다”고 소개했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도 “법적 책임의 내용을 제언(요구사항)에 풀어 놓았다고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작년 6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처음 마련된 이 방안은 무엇보다 피해자 측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대협이 동의한 방안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일본 측 인사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협의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배경의 하나로 ‘정부간에 합의가 이뤄져도 정대협이 거부하면 무산된다’는 인식을 표명해왔다는 점에서 정대협의 동의는 협상을 진행 중인 한일 양국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아 보인다.

아시아여성기금에 관여했던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는 이 방안에 대해 “위안부 문제 해결의 기초가 될 방안이라고 생각한다”며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정상회담 전에 양국이 이 해결 방안에 따라 행동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