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대일 외교기조 기로에 놓이다

입력 2015-04-23 16:33
‘과거사 반성 없이 완전한 형태의 관계개선은 없다’는 박근혜정부의 대일 강경 외교기조가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르는 형국이다. 대일(對日) 원거리외교를 추구하던 중국이 최근 들어 일본과의 관계개선 쪽으로 급선회하고, 일본 역시 중국과의 밀착에 나서면서 우리 정부만 고립되는 모양새다.

비동맹정상회의 참석차 인도네시아를 방문 중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2일(현지시간) 반둥 현지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양자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시 주석은 회담에서 과거사 왜곡을 준엄하게 경고하면서도 일본과의 적극적인 관계개선 의지를 드러냈다. 이른바 ‘실사(實史) 분리’라는 새로운 대일기조를 노출한 셈이다.

이번 양자회담은 사실 일본 정부의 고도의 외교전략에 따라 성사된 것으로 분석된다. 비동맹정상회의는 냉전시대에 탄생한 제3세계권 정상들의 연석회의 성격으로 출발했고, 중국은 매년 정상급 인사를 이 회의에 파견해왔다. 그러나 일본 정상이 이 회의에 참석한 적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따라서 아베 총리의 참석은 의도적으로 중국에 접근하기 위해 마련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는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박근혜 대통령의 불참을 결정했다. 한국 정부대표로는 행정부 서열 4위인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참석했을 뿐이다. 중·일이 자국 이익에 따라 기민하게 움직임에도 한국은 ‘박근혜식’ 대일 원칙외교 노선만 고집한 셈이다.

공교롭게도 집권 연도가 같은 박근혜정부와 ‘시진핑 중국’, ‘아베신조 일본’은 3년차를 맞아 전혀 상반된 외교적 노정을 걷고 있는 모습이다. 중국은 과거사 왜곡 강경대응 ‘코드’로 한국을 붙잡으면서도 일본과는 정상외교는 물론 실리까지 취하고 있다. 일본도 국제사회의 과거사 압박에 일정정도 온건한 태도로 전환하면서 세계 양강인 미·중과의 확실한 유착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반면 한국은 중국과의 밀월 이외에는 대미, 대일 관계에선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미 동맹관계는 현상유지 수준이고, 한·일 관계는 역대 최악의 상태라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 평가다.

시 주석과 아베 총리의 반둥 양자회담은 벌써 두 번째 중·일 정상회담으로 기록된다. 이에 비해 박근혜 대통령은 아직 한번도 한·일 정상회담을 갖지 않았다. 일본에 대한 중국의 태도변화는 그동안 ‘일본 문제에 관한한 중국은 우리 편’이라 여기던 우리 정부에게는 일종의 경종으로 여겨진다. 일본과의 정상외교 복원을 더 이상 미루다가는 동북아 지정학에서 ‘고립 모드’에 갇힐 수 있다는 것이다.

원칙주의 대일 외교기조 대신 실리외교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는다. 한 외교전문가는 2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만약 박 대통령이 남미 순방이 아니라 반둥 비동맹정상회의에 참석했더라면 우리도 한·일 정상회담을 자연스럽게 갖게 됐을 것”이라며 “어떤 실리가 급한지 (정부가) 정교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