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호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과 기다림이었다

입력 2015-04-22 15:29

강정호(28·피츠버그 파이어리츠)는 2006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할 당시 그리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다. 지명 당시 포지션은 포수였다. 또 당시 우승을 밥 먹듯 했던 현대에서 그의 자리는 없었다. 이에 포수와 1루수, 2루수, 3루수, 유격수를 전전했다.

하지만 강정호의 강한 어깨와 장타력을 눈여겨 본 김시진 감독은 꾸준히 그에게 기회를 줬다. 팀 이름이 넥센 히어로즈로 바뀐 지 2년째인 2009년부터 김 감독은 강정호를 유격수 붙박이로 앉혔다. 시즌 초 타율이 2할 언저리에 머무는 ‘멘도사 라인’에 있었지만 계속 기용했다. 결국 강정호는 그 해 타율 0.271, 8홈런, 47타점을 올리며 주전급 유격수가 됐고, 그리고 지난해 첫 40홈런 유격수로 우뚝섰다. 그리고 한국 프로야구 선수 출신으로 사상 처음 메이저리그로 직행했다.

강정호에게 필요한 것은 ‘기다림’이었다. 출장 기회가 문제였다. 클린트 허들 피츠버그 감독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허들 감독은 강정호가 부진에 빠져 있을 때 “그는 문제없이 잘할 것”이라며 “강정호를 계속 경기에 내보내 타격 기회를 줄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피츠버그는 강정호의 장타력을 높이 평가해 지난해 포스팅시스템(비공개경쟁입찰)에서 500만2015달러(55억원)에 영입했다.

허들 감독의 믿음과 기다림에 보답하듯 강정호는 22일(한국시간) 메이저리그 입성 후 첫 멀티히트(한 경기 2안타 이상)와 장타, 타점을 기록하며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렸다.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PNC파크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와의 홈경기에 6번 타자 겸 유격수로 선발 출전해 4타수 2안타 3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그는 두 번째 안타로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5-5로 맞선 7회말 2사 만루에서 상대의 오른손 불펜 투수 제이슨 모테의 시속 154㎞ 직구를 공략해 중견수 키를 넘어가는 싹쓸이 3타점 2루타를 쳐냈다.

강정호는 메이저리그에서도 2경기 연속 선발 출장할 때마다 안타를 쳐냈다. 전날에도 8번 타자 겸 유격수로 선발 출전했다. 3타수 무안타로 침묵했지만 다시 선발 출전의 기회를 주자 맹타로 화답했다. 강정호는 앞서 11일 밀워키 브루어스전에서 메이저리그 첫 선발 출전 기회를 얻었고 3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하지만 다음날 다시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자 메이저리그 첫 안타를 생산했다.

강정호는 “나 자신을 증명하고, 내가 누구인지 보여줄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허들 감독도 반색했다. 허들 감독은 “흥미롭게 지켜봤다. 강정호는 더 좋아진 스윙으로 안타를 기록했다”면서 “이날 경기로 강정호는 자신감을 끌어올리게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

다만 피츠버그는 8회 초 불펜인 앤서니 마이클 왓슨이 1점을 잃고 9회 초 마무리 마크 멜란콘이 3실점을 하며 강정호가 차려놓은 8-5 승리 기회를 지키지 못한 채 8대 9로 역전패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