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로스쿨 총체적 위기 - 졸업생 취업난에 지원자 줄자 교수진 감축

입력 2015-04-22 03:30
세계 최고 수준의 하버드 로스쿨도 최근 지원자가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하버드대 로스쿨 오스틴홀 전경.

미국에서 변호사들의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로스쿨들이 위기에 몰렸다고 워싱턴포스트가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로스쿨 지원자는 10년 새 절반 이하로 뚝 줄었다. 많은 대학들은 로스쿨의 교수진을 감축하고 교과과정을 축소하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가 인용한 미국변호사협회 등에 따르면 2013년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 중 절반을 약간 넘는 변호사들이 정규직에 취업했다. 2007년 로스쿨 졸업 변호사들의 정규직 취업률은 77%였다.

취업률만 떨어진 게 아니라 임금도 하락했다. 2013년 정규직을 따낸 변호사들의 연봉은 평균 7만8205달러(약 8474만원)로 2009년 졸업 변호사들의 연봉보다 8% 적었다.

임금 수준이 낮아지면서 학자금 대출금을 상환하고 나면 손에 쥐는 월급이 몇 푼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아메리칸대학 로스쿨을 2012년에 졸업한 코트니 로빈슨(27·여)은 몇몇 인턴 자리를 전전한 끝에 ‘프레디맥(Freddie Mac)’이라는 국책금융회사에 취업하는 데 성공했다. 그녀가 맡은 자리는 변호사 자격증이 굳이 필요없는 ‘법률분석가’였다.

그나마 안정적인 일자리를 따낸 것에 안도한 로빈슨은 비로소 학자금상환계획을 짰다. 하지만 로스쿨을 졸업하느라 빌린 학자금 15만달러(약 1억6252만원)의 원리금을 20년간 갚는 조건으로 매달 일정액을 월급 3000달러에서 떼고 나니 수중엔 겨우 400달러가 남았다.

아메리칸대 로스쿨 졸업생들은 매달 평균 900달러를 학자금 상환에 쓴다고 한다. 남은 돈으로 주택 월세내고 나면 집을 사는 건 엄두를 못낸다.

비정규직을 옮겨다니거나 끝내 취업을 못하고 노숙자로 전락한 변호사들도 있다고 한다.

기존 변호사들의 고용불안도 심해졌다. 워싱턴 일대 가장 큰 로펌 중 하나인 윌리 레인은 지난달 소속 변호사 48명을 해고했다. 이 로펌의 변호사 중 9%에 달하는 규모다.

이같은 변호사 업계의 해고 바람은 로스쿨의 인기를 떨어뜨렸다. 한 때는 고액연봉이 보장되는 변호사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로스쿨의 경쟁률이 치솟았으나 지원자가 급감했다. 미국로스쿨입학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로스쿨 지원자는 4만1000명이었다. 이는 10년 전인 2004년 9만명의 45% 수준이다. 가장 평판이 높은 하버드대 로스쿨도 지원자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졸업생들의 취업난과 지원자 감소는 대부분의 로스쿨을 위기로 내몰았다. 졸업생들의 취업률이 떨어지자 외부 기부금도 줄었다. 재정 압박을 받자 구조조정에 나선 것이다. 버지니아의 워싱턴앤드리대학은 올 가을 학기에 로스쿨 교수 12명을 감축할 계획이다. 웨스턴미시간대는 지난해 여름 로스쿨의 교수와 교직원 절반을 해고했다. 로스쿨의 교과과정도 대폭 줄어들었다. 경비 절감 차원도 있지만 실무현장에서는 쓰이지도 않는 이론과 지식을 너무 많이 가르친다는 비판을 수용한 것이다. 이론에 치우친 강의를 축소하고 법정진술서 작성법이나 현장실습 등 실무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빌라노바 대학은 로스쿨 학생들에게 취업이 어려우니 아예 창업을 염두에 두고 경제학 과목을 듣도록 권장하고 있다.

블레이크 모란 조지워싱턴대 로스쿨 학장은 “법률시장의 냉엄한 현실이 로스쿨을 잠에서 깨어나도록 하고 있다”며 “내가 아는 모든 로스쿨이 혁신과 교과과정 축소를 단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로스쿨들은 여전히 법률교육을 둘러싼 환경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에모리대학의 도로시 브라운 교수는 “현 제도가 이대로 유지되면 톱 클래스의 로스쿨도 3년 안에 문을 닫게 될 것”이라며 “상위 1%의 로스쿨은 번창하겠지만 나머지 99%는 그렇지 못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전석운 기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