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태운 20대 남성 “부당한 공권력에 대한 울분에서…국가 모독 뜻은 없었다”

입력 2015-04-21 17:16
경찰이 지난 18일 열린 세월호 1주년 추모 집회 현장에서 태극기를 불태운 20대 남성을 쫓고 있다. 이 남성은 21일 한 인터넷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무자비한 공권력에 대한 울분을 참지 못해 저지른 일이다. 국가 모독 뜻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20대 대한민국 남자’라고만 신원을 밝힌 채 인터넷매체 슬로우뉴스와 인터뷰한 그는 태극기를 태운 이유에 대해 “경찰이 공권력을 이용해 (유가족들이) 이동하는 것조차 막는 상황이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났다”며 “공권력을 남용하는 일부 권력자들은 순국선열이 피로써 지킨 태극기를 가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6차인지 7차인지 해산명령이 떨어진 상황이었고, 오후 9시쯤으로 기억한다. 경찰 연행 대기조가 집회 참석자들을 향해 접근해 오고, 물대포를 쏘고 있었다. 그 상황 직후에 우연히 종이 태극기를 현장에서 주웠고 울분을 참지 못해서 태웠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남성이 태극기를 태우는 사진은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얼굴을 반쯤 덮는 뿔테 안경을 쓰고 털모자가 달린 두꺼운 겨울 점퍼를 입고 있었다. 라이터를 이용해 A4 크기의 종이 태극기에 불을 붙였다. 이 장면을 사진기자 10여명이 몰려들어 찍었다. 그는 “당시 불이 잘 붙지 않아 머뭇거리자 기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라이터 뒤를 누르고 있어야 붙는다’고 가르쳐줬다”고도 했다.

이후 일부 보수단체들은 “반국가적 행위”라며 처벌을 촉구했고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김진태 검찰총장도 이날 “태극기나 공권력을 의미하는 경찰 버스를 손괴하는 것은 집회·시위의 본래 취지와 무관하다”며 “폭력시위 사범과 그 배후 조종세력에 대해서는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이 남성이 갑자기 나타나 태극기를 태우곤 아무런 구호나 행동도 없이 사라졌다는 점을 두고 “불법시위에 대한 비난을 가중시키려는 의도가 아니었느냐”는 추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남성은 인터뷰에서 “단독으로 울분을 참지 못해 우발적으로 한 행동을 보고 세월호 유족이나 집회 참석자들을 ‘반역자’라고 부르는 모습을 봤다”며 “유족들께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쳐 너무 죄송하다. 그 점에서는 경솔했다”고 털어놨다. 경찰이 수사에 나선 상황에 대해서는 “불안하다. 하지만 경찰 모습도 실망스럽다”고 했다.

경찰은 이 남성이 모 진보단체 소속 인물이거나 인터넷매체 기자일 것으로 추정하고 추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채증 영상에 얼굴이 드러나지만 아직 당사자를 특정하지 못했다”며 “동선을 파악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경 황인호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