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금품수수 혐의자에 대한 신속한 출국금지 요청은 수사의 ‘ABC’ 아니겠는가.” ‘성완종 리스트’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대전지검장)이 꾸려질 때 법조계의 한 고위 인사는 이같이 평가했다. 하지만 20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일본에 출국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수사팀은 리스트에 오른 인사들을 일일이 출국금지하진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ABC’라는 일각의 관측에도 불구하고 김 전 실장이 출국금지 조치를 피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은 도주 우려가 낮다는 판단 때문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기본권을 제한하는 행정처분인 출국금지는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만 행하게 돼 있다”며 “도주의 가능성이 있었다면 출국금지가 당연히 이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만일 해외에 출국한다 하더라도 언제든 부르면 올 사람이면, 출국금지 조치를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리스트 인사들이 국내에 확고한 정치적 기반을 가진 인물들이라는 점도 검찰이 굳이 출국금지 조치를 하지 않은 배경으로 보인다. 검찰의 다른 관계자는 “출국금지는 과연 자신이 쌓아온 모든 평판과 지위를 팽개치고 해외에 도주할 것인가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며 “예를 들어 피라미드 사기범 조희팔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성완종 리스트’ 진위 여부를 밝히려는 수사팀은 본격적으로 인물을 소환하기 전 자료 재구성 작업을 완비하려고 애써 왔다. 이런 수사팀은 리스트 인사들을 출국금지하지 않은 것이 수사 의지 부족으로 해석되는 기류를 안타까워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팀은 “한 칸을 채워야 그 다음 칸을 채울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수사팀은 김 전 실장 이외의 나머지 리스트 인사들에 대해서도 출국금지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은 언론의 출국금지 보도에 대해서는 NCND(확인도 부인도 않음) 정책을 고수해 왔다. 다만 지난 17일에는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출국금지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이례적으로 “사실과 다르다”고 밝힌 바 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검찰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출국금지 안한 이유
입력 2015-04-20 1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