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의 '정치경영' 결국 비극

입력 2015-04-16 09:08 수정 2015-04-16 09:31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인생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이다. 눈물 젖은 빵을 먹는 등 바닥인생 경험을 토대로 성공한 기업인이라는 평도 있으나 실패한 기업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전 회장은 대아건설을 인수하면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경남기업까지 인수했다. 그러나 경남기업은 경영부실로 상장폐지까지 됐다. 때뮨에 일각에서는 ‘기업경영을 정치경영으로 했다’는 비판도 있다.

15일 한국거래소와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성 전 회장은 20대에 200만원이 안 되는 종자돈으로 건설업에 뛰어들어 1982년 대전·충남지역에 기반을 둔 대아건설을 인수했다. 1990년에는 서산장학재단도 설립했다.

대아건설은 건설사로서는 드물게 1996년 7월 1일 개장한 코스닥시장의 등록(상장)업체가 됐다. 대아건설 주가는 1997년 3월 장중 최고 3만9300원까지 갔으나 1년 후인 1998년 3월 920원까지 추락했다.

1999년 외환위기를 맞아 대아건설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개시해 2002년 12월에서야 졸업했다.

대아건설은 2001년 ‘보물선’ 테마주로 부각되면서 주식시장을 뜨겁게 달궜다. 해저유물 발굴업체인 골드쉽이 인천 옹진군 해상에서 상당한 규모의 은을 실은 청나라 보물선 고승호를 인양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이 회사에 투자한 대아건설이 보물선 테마주로 떠오른 것이다. 2001년 초 2100원에 머물던 대아건설 주가는 5개월 만에 8000원까지 치솟으며 주가조작 논란을 낳기도 했다. 그해 대아건설은 충남 아산 온천으로 잘 알려진 온양관광호텔도 경매를 통해 낙찰받았다.

앞서 2000년 말 중순 토목공사 업체인 대아레저산업도 설립했다. 충남 아산시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성 전 회장의 가족이 지분을 소유한 실질적인 가족기업으로, 계열사의 일감을 도맡아 성장했다.

성 전 회장이 중견그룹의 오너로 거듭난 것은 2003년 도급 순위 20위권인 경남기업을 인수하면서다.

대아건설은 2004년 9월 경남기업에 피흡수 합병되고 그해 10월 21일 코스닥시장에서 등록 취소(상장 폐지)됐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경남기업의 최대주주가 된 성 전 회장은 2005∼2011년 기간에 60여억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성 전 회장은 또 경남기업 인수 직후 경남정보기술에 이어 2007년 베트남 지사를 설립해 랜드마크72빌딩 등 대규모 개발 사업에 나섰고 에너지 공급회사인 수완에너지도 세웠다.

2005년 컨소시엄을 구성해 러시아의 캄차카반도 석유탐사 사업에 이어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마다가스카르 광산개발과 미국 멕시코만 심해 가스탐사 사업 등 자원개발 사업에 잇따라 나섰다.

그러나 그가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경남기업은 경영난에 봉착,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1조원 규모의 랜드마크72빌딩 사업에 발목이 잡혀 워크아웃에 이은 상장폐지의 운명을 맞게 됐다. 이 과정에서 성 전 회장은 여야 정치권은 물론이고 관계, 언론계까지 광범위한 로비를 벌였다는 것이 여의도 정가의 이야기다.



유석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