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팽목항에 다시 꽃이 피었다. 1년 동안 바닷바람에 시달린 노란 리본은 빛이 바래 있었다. 잔인했던 그 날이 다시 진도에 왔다.
15일 오전 9시, 295명을 앗아가고 9명을 집어삼킨 바다에 운무가 짙게 드리워졌다. 아들에게 줄 국화를 든 아버지, 딸에게 부칠 편지를 고이 접은 어머니가 출항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유가족들이 찾아간 수심 44m 세월호 침몰 수역에는 ‘세월’이라 적힌 부표만이 떠 있었다. “작년 이맘때였으면 좋겠어. 그럼 수학여행 안 보낼 텐데….” 고(故) 최윤민양의 아버지 최성용(54)씨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꼭 1년 전, 봄은 우리에게 고통의 계절이 됐다. 그 상처는 갈등에 휘말리며 덧나고 말았다. 유가족들은 여전한 아픔을 안고 다시 이 곳에 왔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찾아올 봄은 이제 치유의 계절이 돼야 한다. 세월호 유가족이란 말이 ‘낙인’이 되지 않도록, 그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모두가 동행해야 할 때다.
팽목항 방파제 끝 ‘기다림의 등대’에는 국화가 여럿 놓여 있었다. 아침부터 찾아오는 발길이 이어졌다. 진도 인근 섬에 사는 문윤홍(52)씨는 가족을 데리고 왔다. 문씨는 “한 바퀴 돌고 인사를 나누고 가야 마음이 편안하다”고 했다. 일곱 살 아들에게 형 누나들이 왜 이 바다에 잠겼는지 알려주고 “커서도 기억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종자 가족들은 안면 있던 자원봉사자들과 재회했다. “언니,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반가움과 안타까움이 겹친 인사가 오갔다.
고통의 터널에 갇힌 사회에 필요한 것은 공동체의 따뜻한 이해와 배려다. 박종익 국립춘천병원장(강원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제 우리는 세월호 앞에서 ‘잊지 않겠습니다’ 대신 ‘늘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진도=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4월 슬픈 바다, 국민일보는 삼백넷의 꽃들을 기억합니다
입력 2015-04-16 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