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자매의 도주극…내연남 살해 후 잠적 1년 3개월만에 검거

입력 2015-04-14 17:23

기막힌 도주극의 시작은 우발적인 범행이었다. 지난해 1월 19일 김모(42·여)씨는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내연남 A씨와 말다툼을 벌였다. 유부남인 그가 “이혼 후 결혼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들은 2012년 인근 술집에서 사장의 소개로 만나 2년여간 사귀던 사이였다.

말싸움이 격해지면서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흥분한 김씨는 급기야 부엌에 있던 흉기로 A씨의 가슴을 찔렀다. 정신을 차린 뒤 경찰에 “A씨가 자해했다”고 신고했다. 곧바로 119구급대가 도착했지만 이미 A씨는 호흡과 맥박이 정지된 상태였다.

경찰은 1차 감식을 끝낸 뒤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김씨가 잠적해버렸다. 다음 날 경찰에 나오기로 했던 김씨의 일란성 쌍둥이 동생도 함께 연락이 두절됐다. 두 사람의 휴대전화 전원도 동시에 꺼졌다. 김씨 명의의 은행예금 50여만원은 전액 인출됐다. 그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한도(200만원)까지 몽땅 받기도 했다.

이후에 김씨의 신용카드 사용실적은 사라졌다. 의료보험이나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등 신분이 노출되는 것들은 어디에서도 사용되지도, 나타나지도 않았다. 경찰이 휴대전화와 은행계좌 이용내역, CCTV 등을 샅샅이 뒤졌지만 김씨와 여동생은 완벽하게 사라졌다.

그렇게 잊혀질 것만 같던 사건은 의외의 곳에서 실마리를 드러냈다. 지난 3월 대전에서 김씨 여동생 명의로 도시가스와 유선방송에 가입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장소는 역시 여동생 명의로 계약된 오피스텔이었다. 오랜 도피 생활 끝에 의식주를 해결하려다 경찰에 꼬리를 밟힌 셈이다.

그런데 오피스텔 근처에서 잠복하던 경찰은 혼란에 빠졌다. 동생의 행적은 포착되는데 김씨는 오리무중이었다. 동생을 잡았다가는 김씨가 또 잠적할 수 있어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즈음 경찰은 이 자매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 사이에 보톡스와 필러 시술을 함께 받은 것을 알아냈다. 일란성 쌍둥이라 비슷하던 외모가 시술을 받고나서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아졌다.

경찰은 지난 9일 김씨를 붙잡았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동생 행세를 하며 일상생활을 해오고 있었다. 대포폰과 현금만 사용하며 경찰을 피했다. 김씨는 “A씨가 차일피일 결혼을 미루는 것에 화가나 다투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고 14일 밝혔다.

김씨의 도피를 도운 여동생은 처벌받지 않는다. 범인이 친족이나 함께 사는 가족일 경우 도주를 돕거나 숨겨주더라도 처벌하지 않는 형법 특례조항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당시 오피스텔 내부에 CCTV가 없어 김씨를 검거하지 않았는데 이후 곧바로 도주했다”며 “이웃에 살던 동생과 도주 방법을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