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영 장로 칼럼-종교인과 신앙인 (115)] 교회에서 사라지는 찬송가를 슬퍼하며

입력 2015-04-14 13:09

그동안 ‘갈렙바이블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많은 교수님들이 한탄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교회 예배에서 사라지는 찬송가에 대한 슬픔이다.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다. 수백 년 동안 계속 불러왔던 찬송가가 무척 많은데, 요즘 예배에서는 무거운 찬양음악으로 치부되어 버렸다. 대신 신나는 록(rock)이나 뉴에이지(new age) 구성의 CCM이 예배에서 자주 불리고 있다. 시끄러운 전자 기타나 드럼 소리는 예배 시간에 듣기 괴롭다고 많은 분들이 이야기한다. 그 소리가 왜 그리 귀에 거슬리고 싫은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CCM의 유래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부터다. 청년들이 히피(hippie)가 되어 길거리를 방황하고 마약과 록 음악에 찌들었던 시절이다. 미국의 척 스미스(Chuck Smith) 목사님은 이들을 교회로 이끌어 들이는 방법이 무엇인가 생각하다가 그들이 부르는 록 음악에 성경 말씀을 작사해 부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시도는 대단히 성공적이었고, 청년들은 교회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 록 음악의 드럼 소리에 좋은 가사는 묻혀 버렸고, 말씀은 멀어져 갔다. 신나는 리듬 속에 젊은이들은 열광했고, 청년들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찬송가가 되어 버렸다.

원래 이 록 음악은 영국의 비틀즈가 발표한 히트곡, ‘Yellow Submarine’을 통해 세상에 크게 알려졌다고 한다. 비틀즈는 이 곡을 작곡하기 위해 인도에 가서 오랫동안 명상을 했고, 힌두교 사원에서 많은 경배를 해서 얻은 귀중한 곡이라고 한다.

로큰롤(rock’n’roll)도 대유행이 되었다. 이 말의 어원은 남녀의 성행위를 상징하는 슬랭이다. 외설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던 음악이다. 아무리 좋은 가사를 붙여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송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이런 곡에 좋은 가사를 붙여서 만들었으니 청년들이 참으로 좋아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곡들을 예배 시간에 사용하지 말고 새 교인의 전도용이나 교회 레크리에이션 음악으로 쓰면 좋았을 텐데, 예배에 사용하니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캐나다의 어떤 교회에 새 신자가 왔는데 자신이 평생 나가던 교회가 찬송 대신 CCM을 부르는 탓에 결국 참지 못하고 교회를 옮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교회마다 점점 더 찬송은 귀해지고 자극적인 CCM은 더욱 널리 퍼져 간다. 다른 교회가 더 강한 메탈 음악을 사용하는 CCM을 부르면 일부 청년들이 그 교회로 대거 이동하는 현상도 있다고 한다.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교회에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성도가 매우 많다. 예배 시간에는 경건함을 유지해야 한다던 옛날 교회가 그리워지는 것은 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까?

경건함을 찾기 위해 천주교 성당을 찾는 교인도 적지 않다. 교회는 시끄러워서 싫다고 말하며 종교를 옮긴다. 그러나 성당에서 경건을 찾을 수는 있겠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 방법도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한다.

교회의 세속화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많은 신학자와 교인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교회에 희망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미 유럽과 미국은 인본주의 신학으로 넘어가 교회가 쇠퇴하고 있는데 아직도 건강한 교회가 남아 있는 한국은 하나님이 희망을 가지고 계신 기독교 국가다. 이대로 몇 년이 더 흐르고 나이 든 세대가 없어지면 한국의 교회도 더욱 세속화될 것이라고 말씀하는 신학자들이 많다.

성경의 말씀이 교회의 중심이 되고 이벤트성 행사가 줄어드는 교회, 드럼과 CCM 대신 찬송이 회복되는 교회, 그리고 성경 말씀이 중심이 되고 사람 대신 예수님이 주인이신 교회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한국유나이트문화재단 이사장, 갈렙바이블아카데미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