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국가(IS)의 주리비아 한국대사관 총격사건은 지금까지 극단주의 테러 무풍지대로 여겨졌던 우리 공관과 재외국민이 더 이상 표적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반미(反美) 색채가 뚜렷한 중동지역에서 ‘한국은 친미국가’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 향후 더 큰 규모의 테러가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다.
‘준드 알칼리파’라는 이름의 소셜네트워크(SNS) 계정은 12일 총격사건 직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준드 알칼리파는 IS 지도자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를 추종하는 병사란 뜻의 아랍어다. 다만 이번 공격이 우리 공관을 IS가 직접 겨냥해 저지른 테러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준드 알칼리파라는 명칭 자체도 IS 추종 무장단체 사이에서는 생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1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슬람국가(IS)를 자칭한 세력이 자신들의 소행임을 인정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섣불리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슬람 극단주의 추종 세력이 한국 재외공관을 직접 노리고 공격한 사례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비춰볼 때, 향후 우리 공관과 재외국민에 대한 테러 위협이 높아지 개연성이 다분하다는 게 중동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정부가 여러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의미다.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지난 1월 중동 순방 과정에서 IS 대책을 위해 2억달러(약 2190억원)를 지원하기로 약속한 것이 화근이 됐다. 이 발언이 IS를 자극했고, IS는 억류하던 일본인 2명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공개했다. 협상은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않던 끝에 결국 인질 전원이 잔인하게 살해됐다.
아베 총리가 약속했던 지원금은 IS를 피해 인근 국가로 떠난 시리아·이라크 난민을 위해 쓰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IS 측이 이를 자신들을 적대한 군사적 지원으로 오해하면서 인질사태로 번진 셈이다. 때문에 외교가 안팎에선 일본 정부가 대(對)IS 메시지 관리에 실패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우리 정부는 다른 서방국가들과 마찬가지로 IS를 ‘극악무도한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비교적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IS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정부가 자칫 IS에 잘못된 메시지를 내놓을 경우 중동국가에 거주하거나 체류중인 우리 국민, 기업, 공관이 곧바로 테러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외교부는 주리비아 대사관을 인접국인 튀니지로 임시 이전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또 리비아에 거주하는 우리 국민과 개별 접촉해 철수를 권고하기로 했다.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정부는 이번 공격으로 희생된 사망자와 부상자의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외교공관에 대한 공격이나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이번 공격을 강력 규탄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기획] 리비아 주재 대사관 테러… 한국 더 이상 테러청정국 아니다
입력 2015-04-13 1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