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 주입해 사람을 산채로 해부”…일본 의료인, 731부대 진실규명 촉구

입력 2015-04-12 20:28
일본 의사와 학자 등이 2차 대전 중 벌어진 일본군 731부대(정식명 관동군방역급수부본부)의 생체 실험 등에 관한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의 의료·보건업 종사자,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의사 윤리 과거·현재·미래 기획실행위원회'(이하 위원회)는 12일 일본 교토(京都)시 소재 지온인(知恩院)와준(和順)회관에서 '역사에 입각한 일본 의사 윤리의 과제'라는 특별 행사를 열어 731부대의 생체실험 문제를 조명했다.

우선 중국 하얼빈의 731부대가 주둔하던 현장 모습, 당시 부대에서 근무했던 이들의 증언, 관련 기록을 담은 영상이 상영됐다. 영상에서는 소년병으로 복무했던 한 일본인 남성이 등장해 731부대에서 실험자들이 피험자의 몸에 균을 주입하고서 열이 나면 좋아했으며 빈사상태에 빠진 실험 대상자를 산채로 해부했다고 참상을 회고했다.

이 부대에서 복무한 또 다른 일본인은 페스트균을 공중에서 투하하는 등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 전쟁 중에 벌어졌다고 증언했다.

12일 행사에서 패널로 나선 곤도 쇼지(近藤昭二) 731부대·세균전 자료센터 공동대표는 731부대에 관한 자료가 거의 공개되지 않은 문제를 지적했다.

곤도 공동대표는 공개 요구에 대해 “일본 정부가 지금도 확인 중이라는 말을 할 뿐”이라며 “어쩌면 731부대에 관해서는 미국과 일본 사이에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말자는) 밀약이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중국인 유족이 낸 소송에서 도쿄지법이 세균전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음에도 일본 정부는 진실 규명에 전혀 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곤도 공동대표는 731부대에 관여한 의사 가네코 준이치(金子順一)가 전후 교토대에 제출한 논문 중에 페스트에 걸린 벼룩을 중국 각지에 뿌렸을 때의 살상 효과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유사한 자료가 전국 대학에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를 토대로 진실 규명이 조금씩 진전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며 ‘731, 이시이 시로(731부대장)와 세균전 부대의 어둠을 파헤친다’는 책을 쓴 저널리스트 아오키 후미코씨는 미국과 일본이 731부대에 관해 일종의 거래를 함으로써 역사가 뒤틀리게 됐을 것이라고 시사했다.

그는 “도쿄재판(극동군사재판)에서 731부대(문제)가 재판받지 않은 것은 미국의 의향(에 따른 것)”이라며 “점령군이 일본에 왔을 때 인체 실험을 포함하는 세균전의 결과를 원했다”고 말했다.

아오키씨는 “먼저 무엇이 일어났는지, 진실이 무엇인지 조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료 공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도 역시 사실 인정이 가장 중요하다”며 “그것은 일본이 제대로 해야 할 일이며 이를 하지 않고 그런 일이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제언했다.

니시야마 가쓰오 ‘15년 전쟁과 일본의학·의료연구회’ 사무국장은 전쟁 중 의사의 잔학 행위를 규명·반성하지 않는 것과 관련해 일본 의학계의 폐쇄성에 주목했다.

그는 “잔학행위 관련자는 모두 죽었지만, 일본에는 의국(醫局, 의료 사무를 취급하거나 의사가 머무는 공간)제도가 있고 동창회가 있다. 이들이 계속 지배하므로 지금 젊은 사람들은 압력을 느낀다”며 하고 싶은 얘기를 자유롭게 하기 어려운 현실을 꼬집었다.

일본의 대학병원에서 의국은 의사의 인사에 영향을 주고 인맥을 형성하는 공간이며 의대 교수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시가의과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한 니시야마 사무국장은 “나는 다행히 교수가 됐지만 교수가 되기 전에 이런 일을 했다면 절대 교수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며 731부대 문제를 금기로 취급하는 분위기를 지적했다.

이날 행사는 위원회가 전후 70년을 맞은 올해 총회 때 731부대의 생체 실험 등 전쟁 중 일본 의학자·의사가 행한 비인도적 행위를 고찰·반성하자고 일본의학회에 제언했으나 수용되지 않자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대안으로서 추진됐다.

행사장에는 의료·보건기관 종사자, 의사·의학자, 역사학자,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대거 방문해 현장에 마련된 좌석 240여개를 가득 채웠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