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함께 한 1시간은 쿠바인과 미국인, 중남미 전 지역에 그들의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10일(현지시간) 파나마 수도 파나마시티에서 열린 미주기구(OAS) 정상회의에서 미국과 쿠바 정상의 59년만의 회동에 대해 미 행정부 고위 관리는 뉴욕타임스(NYT)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어 두 사람 간에는 어떠한 긴장(tention)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3개월 전 관계 정상화 선언을 통해 해빙이 시작된 냉전시대의 두 앙숙 간의 ‘따뜻한’ 분위기는 정상회의장 곳곳에서 감지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상회의가 열린 컨벤션센터 옆 작은 사무실에서 카스트로 의장과 나란히 앉은 뒤 “명백히 역사적인 만남”이라면서 “쿠바 정부 및 쿠바인들과 보다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과거의 한 장(章)을 넘기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지점에 서 있다”고 국교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카스트로 의장도 “양국의 길고 복잡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새로운 시작을 원한다”고 화답했다. 그는 앞서 한 연설에서 “과거 미국이 쿠바를 억압하는 등 많은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잘못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쿠바에 제재를 가할 때 태어나지도 않았고, 아무런 책임이 없다”며 오바마 대통령을 옹호했다. 카스트로 의장은 또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오바마 대통령은 정직한 사람”이라며 호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긴 적대관계로 인해 양국간 신뢰 회복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도 뚜렷해졌다. 카스트로 의장은 오바마 대통령과 회동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논의할 것이다. 하지만 참을성이, 참을성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쿠바 정부가 인권 문제와 같은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도 미국과 논의할 준비가 돼 있지만 압력에 굴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쿠바가 국교 정상화를 위한 최우선 과제로 요구해 온 테러지원국 해제도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이날 회동을 마친 뒤 “(두 정상이) 어떻게 사회가 조직돼야 하는지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고 전한 오바마 대통령은 “서로 다른 미래에 대해 조심스럽게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에둘러 말했다.
정치 분석가들은 테러지원국 해제가 선결 과제라는 쿠바 측과 쿠바의 인권보호대책 강화를 요구한 미국 사이의 간격이 결국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카스트로 의장과의 대화에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국무부가 (테러지원국 해제 여부에 대한) 검토를 끝냈지만 아직 (최종 권고안을) 전달받지 못했다”는 입장을 보였다.
미국과 쿠바 간 관계정상화의 가장 큰 걸림돌인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에 대해 두 나라가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함에 따라 앞으로 당분간은 이 문제를 놓고 밀고 당기는 협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정치 분석가들은 전망했다.
양국이 시간을 두고 인권과 정치적 자유 신장, 테러지원국 해제 등의 주요 현안들을 논의하면서 관계정상화 속도를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이 OAS 회의 전 다시 문을 열겠다고 계획한 양국 대사관 개설도 좀더 시간이 걸릴 개연성이 높아졌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
오바마 카스트로 역사적 회동
입력 2015-04-12 1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