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만이 결정할 일이지, 어떻게 입증하겠나.” 한 검찰 고위 간부는 이름과 금액만 적힌 56자(字) 쪽지 한 장 자체의 증거능력은 보잘 것 없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성완종(64) 전 경남기업 회장의 유품 메모가 충격적이긴 하지만 돈을 건네는 장면이 찍힌 화상 자료도 아니지 않느냐는 반문이었다. 이름이 오르내린 이들이 부인한다면 재반론을 제기할 원 진술자마저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각종 특수수사 기법을 발전시켜온 검찰은 “상황이 달라질 여지가 없는 건 아니다”고도 말한다. 메모 내용을 뒷받침하는 회계 출납장부나 쌍방이 주고받은 금융거래 내역, 로비 장면이 포착된 CCTV 자료 등이 확보된다면 미약한 전문증거(傳聞證據)의 신뢰성이 살아날 수도 있다는 해석이었다.
실제로 검찰은 수수께끼같은 메모가 설명하는 정황을 객관적 영역으로 끌어오기 위해 각종 증거 확보 절차에 착수했다. 12일 서울중앙지검은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에 성완종 전 회장 유품에서 발견된 휴대전화 2대의 삭제 기록 등을 복원해달라고 의뢰했다. 휴대전화들은 경남기업 소속 직원 명의로 돼 있는 폴더 형태 피처폰으로, 현재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스마트폰보다는 구식이다.
성 전 회장의 휴대전화 2대에는 최근 1개월 이내의 사용 기록만 담긴 것으로 전해졌지만 포렌식 작업을 거치면 과거에 삭제된 데이터도 복원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진단이다. 지난 세월호 사건에서도 인양된 스마트폰과 디지털카메라에서 복원한 데이터가 재판 과정에 도움을 줬다. 검찰 수사 착수 이후 성 전 회장이 정치권에 전방위 구명 운동을 펼친 정황이 드러난 것도 대검 포렌식센터의 작업을 주목하게 만든다. 성 전 회장이 자포자기 심정에서 또는 압박 카드로 고위 인사들에게 본인의 금품 제공 내역 등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으로 보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검찰은 성 전 회장이 비밀 장부나 전표, 일일기록부 등을 따로 보관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가까운 유족·비서·보좌진 등에 맡겼을 수도 있다고 보고 추적할 전망이다. 성 전 회장은 생전에 친박 원로 등을 만나 구명을 호소하며 “금품을 받은 이들이 있는데 경남기업 수사를 외면한다”며 장부의 존재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56자 메모가 뭔가를 급히 옮겨 적은 듯한 필체인 것도 ‘성완종 리스트’의 원본 장부가 있다는 추측을 낳게 한다.
검찰은 성 전 회장이 지난 9일 경향신문과 장시간 인터뷰한 통화 내용도 확보하려 애쓰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녹음파일 원본의 제출을 요청했지만 아직 제출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성완종 리스트´ 증거능력 보잘것 없지만… CCTV 자료 등 확보가 관건
입력 2015-04-12 1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