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파문] 김기춘·허태열 등 8명 거론 ‘금품 메모’… 정치권·검찰에 폭탄

입력 2015-04-10 18:09

검찰 수사를 받다 9일 자살한 성완종(64) 전 경남기업 회장의 바지주머니에서 ‘금품 메모’가 나왔다. 전·현 청와대 비서실장과 국무총리 등 박근혜정부 핵심 인사 8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성 전 회장이 세상을 등지며 정치권과 검찰을 향해 ‘폭탄’을 던진 셈이다. 전 정권의 해외자원개발 비리 수사가 ‘성완종 리스트’란 돌발 변수를 만나 현 정권 실세들의 불법자금 수사로 방향 전환할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그러나 금품 공여자 사망, 공소시효 문제 등에 걸려 불발탄에 그칠 거란 관측도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임관혁)는 전날 성 전 회장 시신 검시 과정에서 유력인사 8명 이름이 적힌 자필 메모 1장이 발견됐다고 10일 밝혔다. 검찰은 “그 중 6명의 이름 옆에는 금액도 기재돼 있다”고 말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10만 달러, 허태열 전 비서실장 7억원, 홍준표 경남지사 1억원, 서병수 부산시장 2억원,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2억원, 유정복 인천시장 3억원 등의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실장 이름 옆에는 ‘2006년 9월 26일’이란 날짜도 기록돼 있다. 이완구 국무총리와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 이름도 등장하지만 별도의 금액 표시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메모에 적힌 전체 글자 수는 55자”라며 “수사 단서가 될 수 있을지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우선 필적감정을 의뢰해 성 전 회장이 쓴 게 맞는지 확인키로 했다. 장례절차가 끝나는 대로 유족과 경남기업 측에 관련 자료가 있으면 제출해 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

성 전 회장은 9일 새벽 유서를 남기고 자택을 나온 뒤 경향신문 측에 전화를 걸어 금품 제공 관련 발언을 했다. 경향신문이 공개한 녹음파일에 따르면 “김기춘 전 실장이 2006년 9월 VIP(박근혜 대통령)를 모시고 독일에 갈 때 10만 달러를 바꿔서 전달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의 허태열 전 실장에게도 현금으로 7억원을 건넸다”고 말했다. 메모 속 김·허 전 실장 관련 내용과 대략 일치한다.

당사자들은 일제히 부인했다. 김 전 실장은 “일말의 근거도 없는 황당무계한 허위”라는 입장 자료를 냈다.

검찰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단서 여부 검토’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지만 검찰 내부에서도 회의적 목소리가 높다. 금품 공여자가 사망한 터라 자금 전달 경위, 목적 등 추가 진술 확보가 불가능해 수사한다 해도 기소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정치자금법 공소시효(2007년 12월 법개정 이전 5년, 이후 7년)도 문제가 된다.

‘성완종 리스트’는 정치권에 쓰나미를 몰고 왔다. 여권은 직격탄을 맞았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번 사건을 박근혜 정권 최대의 ‘정치 스캔들’로 규정했다. 야당 일각에선 벌써 특별검사를 거론하고 나섰다. 정국은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게 됐다. 공무원연금 개혁 등 국정 과제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4·29 재·보궐선거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지호일 하윤해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