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년 역사에도 불구하고 국제외교가에서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미주기구(OAS) 정상회의가 올해에는 유례없이 미주 대륙을 넘어 전 세계적인 시선을 받고 있다. 몇 십 년 만의 ‘빅 이벤트’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10~11일 파나마에서 개최되는 정상회의에는 미주 지역 35개국 정상들이 참석한다. 그 중에서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등 세 정상의 행보가 단연 주목된다고 팬암포스트 등 미주 대륙 전문 매체들이 8일(현지시간) 전했다.
쿠바는 미국 자산 몰수 등의 조치 이후 1962년부터 2008년까지 OAS 회원국 자격을 박탈당했다가 2009년 회복했으나 회의에는 불참해왔다. 하지만 올해는 라울이 참여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미국과 쿠바 정상이 반세기 만에 공식 회의석상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2013년 12월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대통령 장례식 때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의장이 몇 초간 악수한 적은 있지만 공식 만남은 이뤄지지 못했다.
두 정상이 만날 경우 지난해 12월 국교정상화 선언 이후 지지부진한 상태인 정상화 협상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대사관 개설과 같은 ‘통큰 합의’를 이끌어낼 경우 또 한 차례 세계를 놀라게 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 국가안보국(NSA)의 도·감청 파문 이후 관계가 악화된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과도 정상회담을 갖고 관계 회복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일련의 만남과 회동을 통해 그동안 남미 국가들의 반미 성향 틈새로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 온 중국에 대한 견제에도 적극 나설 전망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와는 상반되게 베네수엘라와는 격하게 대치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미 의회는 지난해 말 베네수엘라 반정부 시위 때 40여명이 숨지자 인권 탄압 등의 책임을 물어 베네수엘라 군·정보기관 관리들의 자산을 동결하고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제재안을 통과시켰고 오바마 대통령이 이에 서명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최근까지도 이를 강하게 비난해왔다. OAS 참석에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9일 자메이카를 방문해 카리브공동체(CARICOM) 15개 회원국과 에너지, 안보 등의 이슈를 논의했다. 주된 방문 목적은 카리브해 국가들의 베네수엘라에 대한 원유 등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을 도출하는 것이라고 미 언론들이 전했다.
이런 가운데 미 여론조사기관 벤딕센&아만디가 워싱턴포스트 의뢰로 지난달 쿠바인 1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다는 이들이 80%에 달했다. 라울에 대해선 48%가 부정적, 47%가 긍정적이라고 답했으며, 피델 카스트로 전 의장에 대해서도 부정적(50%)인 반응이 긍정적(44%)인 반응보다 많았다. 응답자의 97%는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 협상을 지지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미주기구 정상회의 관전포인트] 쿠바 참석 자체가 이슈… 오바마·라울 통큰 합의 이룰까
입력 2015-04-09 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