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 부부의 팔라우 위령 방문… 일왕의 ‘전쟁을 반성하는 평화’ 아베의 ‘전쟁할 수 있는 일본’과 대비

입력 2015-04-09 16:57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가 ‘전후 70년 전몰자 위령’ 방문 일정 이틀 차인 9일 태평양전쟁 격전지 팔라우 남쪽 페릴류섬을 방문해 일본 정부가 세운 ‘서태평양 전몰자 비’와 미군 전사자 위령비에 헌화했다. 페릴류섬은 1944년 9월 미군 상륙을 계기로 벌어진 전투에서 약 1만명의 일본군과 1700명의 미군이 각각 전사한 태평양전쟁의 대표적인 격전지다.

NHK 등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일왕은 헌화를 마친 뒤 마찬가지로 많은 희생자가 나왔던 앙가우르섬을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이어 함께 섬을 찾은 2차대전 당시 생존군 일본군 병사나 전사자 유족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위로했다.

일왕 부부의 해외 전몰자 위령 방문은 전후 60주년이었던 2005년 미국 자치령인 사이판 방문 이후 두 번째다. 일왕의 이번 방문이 남다른 의미를 갖는 것은 총리관저 등을 중심으로 반대 의견이 나왔지만 이를 무릅쓰고 방문을 강행했다는 점 때문이다. 주된 반대 이유는 팔라우가 정부전용기가 들어설 공항이 없고 숙박이 마땅치 않다는 등 보안상 이유였다. 그러나 일왕은 “전후 70년을 맞는 올해 싸움터에서 쓰러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다녀오겠다”며 해상보안청 순시선을 숙박시설로 삼고 50km 떨어진 섬을 헬기로 이동했다.

일본에서 남쪽으로 3000㎞ 떨어진 팔라우에는 조선인 징용 피해자들의 아픔도 남아있다. 비록 일왕의 위령이 전사한 군인에 국한돼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전쟁을 반성하는 일왕’의 모습은 최근 잇따른 과거사 왜곡으로 주변국을 자극하고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바꿔가고 있는 아베 정권과 확연한 대비를 보이고 있다.

일본 언론들도 일왕의 팔라우 방문을 계기로 아베 정권을 비판했다. 아사히신문은 사설을 통해 ‘일왕의 위령 방문을 계기로 역사를 직시하자’고 역설했으며, 도쿄신문도 아베 정권이 이달 중에 발표할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이 일본의 ‘전수방위(상대방으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 비로소 방위한다는 내용)’ 원칙을 바꾸려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