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기존 보수여당의 스탠스에서 한 발짝 왼쪽으로 나아간 것이었다. 그는 정치인생 첫 대표연설을 통해 ‘경제는 중도, 안보는 보수’의 평소 지론을 유감없이 펼쳐 놨다. 그 자체로 폭발적인 증세 문제에서부터 재벌 개혁, 대선공약의 허구성 지적까지 민감한 이슈를 피해가지 않았다. “야당 원내대표가 연설하는 줄 알았다”(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최고위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보수의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유 원내대표는 “어제의 새누리당이 경제성장과 자유시장경제에 치우친 정당이었다면 이제는 성장과 복지의 균형발전을 추구 하겠다”고 선언했다. 진보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복지 문제를 과감하게 안고 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여기엔 양극화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안보를 지키는 것과 내부의 붕괴 위험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는 것 모두 보수의 책무”라는 말에 이런 인식이 그대로 담겨 있다. 유 원내대표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양극화 해소를 언급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찰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여야, 보수와 진보 모두 진영 논리에 빠져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았던 일을 그만두자”고 제안했다. 공무원연금 개혁, 복지모델 확립 등 국가 장래를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은 ‘합의의 정치’로 풀자는 거다.
이를 두고 ‘새누리당판 제3의 길’이라는 말이 나왔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우클릭’ 행보와 겹쳐져 “본격적인 중원 쟁탈전이 시작됐다”는 해석도 뒤따랐다.
유 원내대표는 ‘중(中)부담·중복지’ 복지모델에 대한 소신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가진 자가 더 많은 세금을 낸다는 원칙, 법인세도 성역이 될 수 없다는 원칙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2012년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대선공약이었던 134조5000억원의 공약가계부를 더 이상 지킬 수 없는 점을 반성한다고도 했다.
재벌 개혁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유 원내대표는 “천민자본주의에서 벗어나라”거나 “재벌그룹 총수 일가와 임원들의 불법 행위에 대해선 보통 기업인들과 똑같이 처벌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반면 안보에 있어서만큼은 정통 보수의 길을 확실히 가겠다고 해 야당과 차별화했다. 그는 이성적인 대북정책이 통하지 않는 이유로 북한의 핵 미사일을 꼽았다. 이를 위해 고(高)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새정치연합을 겨냥해선 “안보정당은 한마디 말로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환영하지만…” 속내 복잡한 野=새정치민주연합은 공식적으로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박완주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새누리당의 놀라운 변화, 유 원내대표의 합의의 정치 제안에 공감한다”고 했다. 현 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한 데 대해선 “용기있는 진단”이라고 치켜세웠다. 다만 “진단은 옳았지만 처방이 없다는 점은 아쉽다”고 했다. 일각에선 상대적으로 야당의 선명성이 묻히면서 중도 의제를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유승민 원내대표 “보수의 새 지평을 열겠다”
입력 2015-04-08 1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