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반목 미-이란, 커피·화이트보드 놓고 7박8일 대타협

입력 2015-04-05 20:23
연일 이어지는 밤샘에 지친 표정의 대표들, 커피머신 소리, 초호화 호텔에 어울리지 않는 화이트보드….

지난 2일(현지시간) 이란 핵협상이 극적인 타결에 이르기 직전까지 스위스 로잔의 협상장에서 빈번하게 볼 수 있던 광경들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미국과 이란이 35년간의 반목을 극복하고 협상 타결에 이른 것은 이처럼 막판 7박8일 동안 한 호텔에서 씨름하며 이견을 좁힌 덕분이라며 협상 뒷이야기를 3일 소개했다.

협상장으로 사용된 로잔의 보 리바주 호텔은 레만 호숫가에 있는 초호화 호텔로 스위트룸 1일 숙박비가 1500달러(약 164만원)를 넘는다.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차관은 호화롭게 장식된 이 호텔 안을 누비면서 화이트보드 하나를 꼬리처럼 달고 다녔다고 미국 측 대표들은 전했다. 이 화이트보드는 미국과 이란 당국자들이 잠정 합의 사항을 써놓는 용도였다. 일부 내용은 영어와 페르시아어로 같이 적히기도 했다.

NYT는 바로 이 화이트보드가 이번 협상에서 중요한 외교적 기능을 했다고 전했다. 양측 대표들은 화이트보드 덕에 협상 내용을 문서화하기 전 단계에서 제안 사항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누군가 잘 지워지지 않는 일반 펜으로 기밀사항인 숫자 등을 적었다가 애를 먹기도 했지만 한 백악관 관리는 “아주 멋진 저급 기술 해법이었다”고 만족했다.

막판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밤샘은 다반사였다. 협상장에 마련된 커피머신은 카페인으로 잠을 쫓으려는 미국과 이란 대표들 때문에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아침식사 장소에 나타난 대표들은 흡사 20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처럼 보였다.

무함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협상 타결 전날인 1일 ‘얼마나 잤느냐’는 질문에 “그나마 운이 좋아서 두 시간 잤다”고 답하기도 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갇힌 기분이 들었는지 그 와중에도 짬을 내 크레페를 사러 나가거나 미국 기자들의 생일을 축하하러 술집에 들르기도 했다. 자전거도 세 차례 타러 갔는데 그 중 두 차례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전화를 받으러 돌아와야 했다.

협상 잠정 마감시한인 3월 31일이 다가오면서 긴장은 높아졌지만 그 수위는 달랐다. 자국 의회에 성과를 보여야 하는 케리 장관에 비해 이란 측 대표들은 시한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다. 케리 장관은 이러한 이란에 대한 ‘압박전술’의 하나로 끊임없이 귀국 일정을 잡았다. 이 때문에 그의 팀원들은 세 차례나 비행기에 실을 짐을 싸서 맡겼다가 몇 시간 만에 다시 찾아와야 했다.

협상 과정에서 돌파구가 마련된 데는 알크바르 살레히 이란 원자력청(AEOI) 청장과 어니스트 모니즈 미국 에너지 장관의 역할이 컸다고 미국 측 대표들은 전했다.

같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출신 물리학자로 기술적 이견을 해소하기 위해 막판 협상에 투입된 이들을 두고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둘은 협상을 과학적인 문제로 다뤘다”고 말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