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 나셨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찬송가 160장 ‘무덤에 머물러’)
한국교회 성도들이 5일 일제히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한목소리로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했다. 한국교회는 부활의 기쁨을 경험한 제자들이 복음전파를 위해 세상으로 향했던 것처럼 생명과 평강의 복음을 소외되고 고난당한 이웃 등에게 전하기로 했다(요 20:21).
한국교회 40개 교단 대표와 성도들은 5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린 ‘2015 한국교회 부활절연합예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하고 주 안에서 하나가 될 것을 다짐했다. 이들은 광복·분단 70주년을 맞아 한반도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서도 힘쓰기로 했다.
부활절 아침 ‘해갈’의 기쁨을 선사한 단비가 내린 후 열린 예배는 장종현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 총회장의 집례로 진행됐다. 김종훈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전 감독은 ‘죄의 고백과 용서의 선언’에서 “먼저 화목케 하는 직분을 받았으나 그러지 못한 것을 고백하고 우리를 불쌍히 여겨 우리가 하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백남선 예장합동 총회장은 ‘그리스도의 부활, 화해와 통일로!’라는 설교에서 “한반도가 일제 치하에서 해방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인데 통일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예수님의 부활은 교회가 믿고 전하는 복음의 핵심이요, 우리 민족을 어둠 속에서 이끄는 빛”이라면서 “주님의 몸 된 교회가 하나 돼야 하고 특히 성경의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하나 되듯 남한과 북한이 하나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서와 화해,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도 이어졌다. 천환(예장고려) 우종휴(예장합신) 이종복(예수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은 “남북이 서로 무기를 버리고 손을 잡고 하나가 되는 평화통일을 이루게 해 달라”고 간구했다.
3부 ‘성찬’은 김철환 기독교한국루터회 총회장의 집례로 진행됐다. 4부 ‘세상으로 나아감’에선 손달익 예장통합 전 총회장이 ‘화해와 통일에 대한 비전 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는 선언문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마시게 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잊은 채 남북의 냉전체제 경쟁에 앞장섰음을 반성하고 올해가 평화통일시대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도록 하자”고 말했다.
이신웅 부활절연합예배 준비위원회 대표대회장은 “화해의 영이신 성령님, 우리가 서로 부둥켜안고 동과 서, 남과 북이 하나 되게 해 달라”면서 “우리 모두 생명의 복음으로 세상을 치유하는 부활의 증인이 되자”고 대회사를 했다. 예배에는 양병희 한국교회연합 대표회장, 황용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 황수원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이 축사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도 이날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교회 부활절 희망나눔 특별감사예배’를 드렸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돌보고 있는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소속 관계자와 다문화가정, 장애인, 북한이탈주민 출신의 성도 등 650여명을 초청해 ‘나눔과 섬김’을 통한 부활절의 의미를 되새겼다. 주최 측은 이들 단체에 생필품이 담긴 ‘희망나눔 박스’와 특별감사예배 헌금 전액을 전달키로 했다.
이영훈 한기총 대표회장은 환영사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얻은 희망과 축복을 땅 끝까지 전파할 책임이 있다”면서 “우리가 향할 땅 끝은 가난한 자, 소외당한 자, 고통과 외로움에 처한 자들이다. 이들을 위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자”고 말했다.
설교는 한기총 대표회장을 지낸 박종순(충신교회 원로) 목사가 전했다. 박 목사는 ‘내가 믿나이다(요 20:24~29)’를 제목으로 한 메시지를 통해 “우리 시대는 희망이 실종되고 절망 바이러스가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다. 안된다, 못한다, 끝장이다, 추락한다는 용어들이 춤을 추고 도처마다 패배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면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때, 한국교회는 부활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 목사는 이어 “교회 덕분에 나라가 바로 서고, 이 시대가 행복하며, 살기 좋은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라며 “부활 신앙 위에 가정과 교회, 나라를 세워나가자”고 강조했다.
총 3부로 진행된 예배에서는 ‘대통령과 공직자’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 ‘한국교회의 연합·일치’들을 위한 특별기도 순서도 마련됐다. 정의화 국회의장과 권용현 여성가족부 차관 등 정·관계 인사들의 축사 등도 이어졌다. 예배 참석자들은 ‘2015 부활절 결의문’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섬기며, 대국민 통합과 남북이 복음적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NCCK도 서울 용산구 소월로 중앙루터교회에서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부활절새벽예배를 드렸다. 대표기도를 맡은 한국구세군 박종덕 사령관은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노숙자들, 일본으로부터 아직 위로받지 못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 속에 주님께서 찾아가 달라”며 “이들을 희망과 생명의 미래로 이끌어 달라”고 간구했다.
대한성공회 김근상 주교는 ‘그리스도의 부활 우리의 부활’을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했다. 김 주교는 “예수께서는 부활하시고 갈릴리에서 우리를 만나자고 하신다”며 “부활의 기적이 필요한 곳, 여러분의 따뜻한 인사가 필요한 곳으로 여러분을 초대하고 계신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시대의 갈릴리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하는 것이 우리가 부활의 증인이 되고, 부활의 기쁨을 나누는 유일한 길”이라며 “예수님도 분명 고통스럽고 아파하는 이들을 찾아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손을 잡으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NCCK는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과 공동으로 작성한 ‘2015년 부활절 남북공동기도문’으로 기도하는 시간도 마련했다. 대표로 기도문을 읽은 기독교한국루터회 김철환 총회장은 “분단 70년 용서와 화해의 불길이 온 겨레 방방곡곡에 타오르기를 기도한다”며 “이산의 아픔을 씻어내고 우리 후손에게 살아 있는 하나 된 조국을 선물하게 해 달라”고 말했다.
전국 주요 교회도 다양한 행사로 부활의 기쁨을 나눴다. 서울 명성교회(김삼환 목사)는 ‘오직 복음!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했으며, 예수 부활을 상징하는 대형 십자가에 백합화를 꽂는 행사를 가졌다. ‘부활, 그리고 세 가지 기적’이라는 주제로 저녁 찬양예배를 드렸으며, 부활절 계란 작품 전시회를 개최했다. 서울 강동구와 경기도 용인, 광주, 안산에 위치한 장애인 복지시설 8곳에 후원금도 전달했다.
광림교회(김정석 목사)는 부활절 계란을 육군군사학교, 경찰대학, 국립경찰병원, 광림사랑의집 등에 나눠주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했다. 교회는 저녁예배 때 ‘부활의 송가’라는 주제로 음악예배를 드렸으며, 교회 광장에서 선교사 내한 130주년 기념전시회를 개최했다.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는 부활절 예배 때 태신자 작정 기도카드를 작성했으며, 오는 10월 새생명축제까지 전도에 힘쓰기로 했다. 교회는 부활절 직전까지 매일 1만1000여명이 참석하는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를 개최했다.
부산 수영로교회(이규현 목사)와 인천 주안장로교회(주승중 목사), 광주 동명교회(이상복 목사), 대구 동부교회(김서택 목사), 대전 새로남교회(오정호 목사)도 성찬식과 부활절 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부활신앙을 되새겼다.
다음은 교단연합 한기총 NCCK 설교 전문.
<교단연합 부활절 예배 설교 전문>
그리스도의 부활, 화해와 통일로!
겔 37:15-23; 막 16:1-11; 엡 2:5-6; 3:6
백남선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장)
할렐루야, 우리 주님, 부활하셨습니다! 사망과 어둠의 권세를 이기시고 주님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부활하심을 온 땅의 교회들과 세계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기뻐하고 축하합니다. 긴 겨우내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생명의 싹이 올라오고, 깊고 깊은 어둠 끝에 여명의 빛이 비쳐오듯, 우리 주님이 장사된 지 3일 만에 부활의 몸으로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2000년 전, 주님의 부활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은 과거의 기억에 머물지 않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오늘 우리 모두에게 또 다시 새로운 생명의 소식을 전해줍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교회들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게 된 것이 무엇이며, 증언하는 것이 무엇임을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셨음이라.”(고전 15:14-15a). 우리가 믿는 도(道)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고백하는 이 땅의 모든 교회는 매 주일 공동체로 모여 예배할 때마다 같은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하신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는 부활을 전제함을 믿습니다. 또한 십자가 없이는 부활이 무의미함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부활이 없으면, 그분의 승천도 없고, 승천이 없으면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님의 임재도 없으며, 교회의 최후 소망인 주님의 다시 오심도 없습니다. 주님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며 믿음도 헛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모든 교회는 부활하신 주님을 축하하고 선포합니다.
성경은 주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건이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후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세 가지였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죽였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살리셨다.”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다.” 베드로가 이렇게 전하자 그 말씀을 듣고 3000명, 5000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경은 반복해서 당시 많은 증인들이 주님의 부활을 목격했다고 증언합니다. 그 가운데 열 두 제자와 오백여 형제들이 있고,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도 있었습니다(고전 15:5-8).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먼저 만난 여인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이었습니다(막 16:1). 주님께서 일곱 귀신을 쫓아주셨던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새 언약의 시대, 부활의 시대의 문이 열렸습니다. 인류 역사에는 기적과 같은 위대하고, 혁명적인 사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한 인류 역사에 가장 위대하며, 가장 신비한 사건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생명으로 어둠과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구원의 대변혁 사건입니다.
그렇기에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흥분과 감격 속에 증언했습니다.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행 3:15).
예수님의 부활은 20000년 전 유대 땅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 사건은 2000년 전의 시간과 유대 땅이라는 공간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사망 권세를 이기신 주님의 부활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 2:7)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 한 분만의 부활 사건이 아닙니다. 가고 오는 모든 세대, 모든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풍성한 생명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그의 교회들에게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엡 3:6)고 선언했습니다.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을 때,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다시 살아난 우리도 흑암의 권세를 이겼습니다. 그리고 생명과 빛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130년 전 1885년 4월 5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우리에게 전하여졌습니다. 최초의 복음 선교사인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와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부부가 인천 제물포항에 상륙함으로 한국에서의 복음의 역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아펜젤러는 다음과 같은 기도를 남겼습니다. “우리는 부활절 아침에 여기 도착하였습니다. 이 아침에 사망의 철책(鐵柵)을 부수고 일어나신 주님께서 이 나라 백성들이 얽매여 있는 쇠사슬을 끊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의 광명과 자유를 얻게 하여 주소서!”
2000년 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우리 민족에게 생명의 소식이 되었습니다. 각 사람의 영혼을 살렸고, 우리의 갈 길을 밝혀주는 빛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무지와 가난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국가 건설의 소망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70년전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우리는 일제 치하에서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 또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 풍요와 자유를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일할 주목받는 새로운 리더로 성장했습니다. 한국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 소식이 우리 민족을 생명의 빛으로 인도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주님이 이기신 사망의 권세가 무엇이며, 죽음에서 다시 사신 부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선포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엡2:14~16). 주님은 부활을 통해 자신의 몸인 교회를 나누고, 세상을 분열케 하는 어둠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찢겨진 주님의 몸과 분열된 하나님의 세상을 한 몸으로 세우시는 능력입니다. 생명은 한 몸에 있습니다. 그러나 찢겨 지고, 나누인 몸은 죽은 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로 하나 되게 하여 생명으로 다시 살게 합니다. 빛은 하나가 됩니다. 생명의 역사는 하나입니다. 전에 어둠일 때 서로 외인이며 나그네 같이 각각 따로 지내던 우리가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중간에 막힌 담’을 허무는 능력의 소식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이제 화평의 때가 왔음을 알리는 복음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분쟁과 시기와 다툼과 전쟁의 시간이 끝났음을, 이제는 의와 평강과 화목과 희락의 시대가 왔음을 선포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 “샬롬,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19)라고 인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 세상을 위한 화해의 사신으로서 성령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먼저, 주님의 몸 된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한 분이십니다. 우리의 중보자 그리스도도 한 분이시오, 진리의 영이시며, 교회의 영이신 성령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몸 된 교회도 하나이어야 마땅합니다. 한 분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부르심도, 믿음도, 세례도 하나입니다(엡 4:4~6).
130년 전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 부부와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가 같은 날 같은 시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이는 교회의 연합을 위한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감리교와 장로교는 선교지 예양(禮讓)을 비롯하여 전도, 출판, 교육, 의료, 복지 등의 사업에서 연합하였습니다.
1905년에는 장로교와 감리교가 함께 하는 ‘한국복음주의선교회연합공의회’를 만들었으며, 한국에 하나의 교회, 즉 ‘대한예수교회’를 세우려는 계획도 세웠습니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일한 교회는 세워지지 못하였지만, 감리교와 장로교는 각각 단일한 교단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후 100여년 동안 한국의 교회와 교단들은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역사의 굴곡을 거치면서 때로는 불가피하게 혹은 교리적 차이 때문에, 그러면서도 인간의 욕망이 어우러져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연합을 위한 노력들도 있었지만 그 연합운동이 다시 분열의 주된 원인이 되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기도 하였습니다. 한국교회의 분열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흥과 성장을 주셨다면, 이제는 연합과 일치를 통하여 교회를 보전해야 할 때입니다.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성경이 가르치는 연합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의 주님은 그리스도의 한 몸인 교회가 분열된 사회와 세상을 싸매는 화해의 사신으로 이끄십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극심한 불평등과 양극화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역과 인종과 성별에 따라, 소득의 격차와 교육의 정도에 따라, 심지어 어른 세대와 젊은 세대 간에 오해와 단절의 장벽이 높게 쌓여 있습니다. 2014년 4월 수많은 젊은 생명들이 한 순간에 수장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지 않고 정쟁의 볼모로 잡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우는 자들과 함께 울지 못하고, 자녀를 잃은 부모의 가슴으로 탄식하지도 못하였으며, 이데올로기로 착색된 세상의 시각을 가지고 보려 하였음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의 근본적인 모순인 남과 북의 갈등도 크게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자랑스러운 해방의 역사 70년은 또한 수치스런 분단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정신적 역량이 부족하였기에, 또한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이해관계 때문에,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고 우리 주님의 평화의 분부를 이루어낼 수 없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지 못하고 불신의 벽을 쌓는데 한 축을 담당하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에 의한 부활 장으로 잘 알려진 에스겔 37장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통일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이라고 쓴 막대기가 하나가 되듯이 남과북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22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것입니까? 어떻게 인종과 민족과 문화의 편견을 버리고 모든 인류를 두루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십자가와 부활 신앙만이 이를 가능하게 해 줍니다! 우리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내려놓고 고통 받는 사회의 현실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썩어지는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이야말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이요, 인간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는 것을 신앙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초대교회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us)은 “성도의 부활에 구원의 전 과정의 은총이 다 들어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의 ‘영광스러운 몸의 부활’을 소망하며 지금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기에 힘씁시다. 주님의 부활의 복음을 어둠이 충만한 이 땅 곳곳에 알리고, 가르칩시다. 우리 모두가 부활의 증인입니다. 이론과 교리의 증인이 아닙니다. 행함과 진실함의 증인임을 기억합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부활하시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편지입니다. 우리가 어둠이 지배하는 이 사회를 비추는 빛이며, 불의함이 만연한 이 세상을 바르게 살리는 소금임을 기억합시다. 그리스도의 몸 된 우리 교회들도 주님의 진리의 말씀에 따라 날마다 개혁됩시다.
날마다 성별되고, 거룩해집시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와 같았던 우리의 몸이 부활의 생기를 얻었으니, 그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여호와의 큰 군대가 됩시다(겔 37:1~14). 주님의 부활의 은혜가 이 땅과 저 북녘과 온 누리에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한기총 부활절 예배 설교문 전문>
내가 믿나이다
요한복음 20:24~29
박종순 목사(한기총 증경회장·충신교회 원로)
종교마다 특성이 있습니다. 그 종교를 시작한 교주가 있고, 경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전을 기반으로 한 교리가 있습니다. 기독교의 교주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경전은 성경인데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1,600여년 동안 40여명의 사람들이 기록한 방대한 경전입니다. 66권에 달하는 방대한 책인 성경의 내용을 한마디로 설명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강조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성경은 장차 구원자로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신약성경은 이 땅에 구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그의 생애, 고난,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승천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장차 심판주로 재림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빼버리면 성경은 한낱 교양서적이나 역사책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복지, 과학을 강조하고 가르친다면 기독교는 하등종교의 틀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 없는 기독교는 참 기독교가 아닙니다. 예수 믿지 않고 다른 것을 믿는 기독교인은 형식적 기독교인일 뿐 구원받은 기독교인은 될 수 없습니다. 2000년 전이나 오늘 그리고 수만년이 지난 다음세대에도 기독교는 예수를 믿는 종교이며, 믿어야 하는 종교이며, 믿지 않으면 기독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예수는 어떤 분입니까? 내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만 죄사함 받고 구원 받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믿으면 영생을 얻고 믿지 않으면 심판 받고 지옥에 들어가게 된다”라고.
더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이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을 믿는 종교입니다. 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20년이나 30년 교회를 드나들었더라도,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직분을 맡고 봉사했더라도, 3~4대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예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신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그는 기독교인도 아니고 예수님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던 그 당시에도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진짜로 죽은 것이 아니라 가사상태에 있다가 깨어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가사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몰래 훔쳐다가 감춘 후 살아났다고 거짓말 했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유기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을 따르던 광신도들이 환상을 보고 예수가 살아났다는 헛소문을 퍼트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환상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성경이 증언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장사 지난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15:4) “게바(베드로)에게 보이시고 열두 제자에게와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다”(15:5~8)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15:17)라고 했고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15:52)고 했습니다.
왜 기독교신앙에서 부활이 중요합니까?
1. 소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끝이다”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꿈도 없고 희망도 없고 비전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오늘 죽으면 인생이 끝나는 사람에게 무슨 희망이 있고 꿈이 있고 비전이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절망하거나 포기하거나 좌절할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니다. 죽음은 인생의 종점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다. 순간과 찰나에 종지부를 찍고 영원한 세계를 향해 거보를 내딛는 시작이다.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죽음 뒤엔 영원한 부활이 있다. 예수님의 부활이 그것을 증명한다”라고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뒤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실패 때문에 주저앉지 않습니다. 죽음도 겁내지 않습니다. 죽어도 다시 산다는 부활 소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 로마 황제 가운데 기독교인들을 가장 간악하게 박해한 사람은 네로였습니다. 원형극장에서 훈련된 검투사와 기독교인을 검투로 겨루게 해 살해했습니다. 굶주린 맹수에게 찢겨 죽게 했습니다. 타오르는 불더미에 태워 죽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칼에 찔려 죽고 맹수에게 찢겨 죽고 장작불에 타 죽는 기독교인들이 절규하거나 발악하지 않고 하늘을 향해 손들고 기도하거나 찬송을 불렀습니다.
네로가 보고 싶은 장면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어가는 기독교인들이 살려 달라고 소리치고 죽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기도하고 찬송하는 모습을 보는 네로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정신병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죽어도 다시 산다는 부활소망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응급환자가 들어오는 응급실은 야전병원과 같답니다. 어느 날 저녁, 교통사고를 당한 대학생이 구급차에 실려 병원응급실로 들어왔습니다. 부상이 심해 의식을 잃고 있었습니다. 연락을 받은 가족들이 쫒아왔습니다. 어머니가 대성통곡을 합니다. 가족들도 오열합니다. “아들아 눈 떠봐라, 엄마다. 너 죽으면 안돼. 너 죽으면 엄마도 죽어!” 7시간 긴 수술이 끝나고 중환자실로 옮겼습니다. 의식이 돌아온 아들이 실낱같은 눈을 뜨고 어머니에게 한 말은 “엄마, 나 살려줘”였답니다. 이틀 동안 사경을 헤매다 젊은이는 숨을 거뒀습니다.
당직의사의 말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저희 병원은 서울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대학병원입니다. 그런데 그 젊은이를 살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가족도 부모도 매한가지 였습니다.”
사람은 낳고 키울 수는 있지만 생명의 주인은 아닙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2장 7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고 했습니다. 생기는 히브리어로 ‘루아흐’입니다. 그 뜻은 바람, 기운, 생기, 호흡, 성령 등 넓은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흙으로 만들고 생명을 불어넣어주신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생명은 내 맘대로 못합니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내가 나를 살리지 못합니다. 현대 과학이나 의학이 생명을 연장하는 데는 기여하고 있지만 생명을 살리는 일은 못합니다. 부활신앙은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영적 에너지를 공급해 줍니다.
2. 부활신앙은 민족정신사의 댐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는 희망이 실종되고 절망 바이러스가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습니다. 안된다, 못한다, 할 수 없다, 끝장이다, 출구가 없다, 추락한다 라는 용어들이 춤을 추고 패배주의가 도처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국교회는 부활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할 수 있다, 된다, 가능하다 라는 용어들이 키워드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내가 안 믿는 예수를 누구에게 믿으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내가 바로 살지 못하면서 어떻게 누구에게 바로 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내가 입도 열지 못하는 예수님의 부활을 어떻게 전할 수 있습니까?
“교회가 가는 곳에 국가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 시대는 상처 받은 사람들, 아파하는 사람들, 고통 받는 사람들, 서럽고, 슬프고, 괴롭고, 외로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하나님과 성경 없이 이 세상을 바르게 통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고,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기독교가 정부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기독교가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종교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2대 클리브랜드 대통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때 가장 순수한 애국심과 최고의 국민정신을 갖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회 때문에 나라가 바로 되고 우리 때문에 우리 시대가 행복하고 살기 좋은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 반대가 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합시다. 예수님의 부활을 고백하고 선포합시다. 그 부활신앙 위에 가정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고 나라를 세워나갑시다.
본문 요한복음 20장 24~29절 말씀으로 결론을 찾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도마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고 그 예수님을 직접 만났다는 다른 제자들의 말을 그는 믿지 못했습니다. “내가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 내 손으로 직접 만져보기 전엔 믿을 수 없다”며 믿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도마야 네 눈으로 보아라 네 손으로 만져 보아라 그리고 의심하지 말고 믿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직접 보지 못하고 믿는 사람들이 더 복이 있도다.”
중요한 것은 나의 고백입니다.
우리 이 시간 여기서 함께 고백하십시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주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성도의 부활도 믿습니다.”
“나의 부활도 믿습니다” 아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부활절새벽예배 설교>
대한성공회 김근상 주교
‘그리스도의 부활, 우리의 부활’
신명기 30장 15~20절(구약)
시편 44편(시편)
로마서 12장 14~21절(신약)
요한복음 24장 36~49절(복음서)
기억나십니까. 예수님께 향유 한 번 더 바르려고 서성이던 막달라 마리아를. 마리아는 빈 무덤을 보고 화들짝 놀라서 부활을 생각하기는커녕 제자들이 시신을 숨겼나 보다 하고 단숨에 달려가 제자들에게 ‘예수님 시신이 없어졌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께서 말 걸었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전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늘 그렇게 사랑을 담아 부르시던 그 모습대로 마리아라고 하시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우리 예수님 진짜 부활한 것 맞네’라고 놀랍니다. 이 모습을 보며 2000여년이 훌쩍 지나 부활을 맞이하는 우리가 이 시점에서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 부활을 정말 돈 많이 쓰고 화려하게 그렇게 하며 기억하는 것이 필요할까요.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부활절연합예배는 잘 세팅된 행사가 아닙니다. 그게 교회 자랑 인물 자랑 돈자랑 하려고 모이는 것이지 그곳에서 과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싫어하시던 유대교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다시 모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하지만 조금 늦게 부활한 예수님을 알아봐서 안절부절하던 막달라 마리아 같은 모습으로 여기 모여있습니다. 예수님 말고는 별로 사람대접 받아보지 못했던 마리아의 모습으로 이 새벽에 여기에 모였습니다. 정말 잘 오셨습니다.
왜 하필 갈릴리인입니까. 그곳은 버려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돈 자랑하고 큰 성당 자랑하는 예루살렘이나 로마가 아니라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십니다. 2015년 대한민국의 갈릴리는 어디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먼저 찾아가실 곳은 어디입니까. 지금 치유가 위로가 희망이 필요한 곳이 어디입니까. 그곳이 오늘의 갈릴리입니다. 팽목항, 비정규직 노동자들, 밀양, 장애자, 노인, 어린이들 누구든 어디든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장소는 여러분의 갈릴리입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의 죽음이 억울한 죽음이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죄 없이 죽었다는 것도 다 아십니다. 안타까움 죽음이죠. 빌라도가 죽였습니까. 아닙니다. 빌라도 때 죽었습니다. 헤롯 왕이 죽였습니까. 아닙니다. 헤롯왕은 나약한 왕이였습니다. 누가 죽였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른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못 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바로 접니다. 그게 바로 저희일 것입니다. 여러분도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랬을 겁니다.
지난 4월 16일 수학여행 가던 배가 침몰했다는 뉴스를 듣고 곧 구조될 것이라는 기대에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무도 구해내지 못한 채 우리는 그들을 바다에 버렸습니다. 구하지 못한 게 아니라 버린 것입니다. 구해내야 할 사람이 옆에 있었는데 또 그 아이를 구해내야 할 사람들이 책임져야 하는데 왜 그들을 구하지 못 한게 제 탓처럼 느껴질까요. 우리가 예수를 버렸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1년간 가슴 끓으며 살아왔습니다. 세월호시행령은 진실을 감추고 조기종결하자는 뉘앙스가 강합니다. 고통으로부터 빨리 해방됐으면 좋겠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다시 순례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참 어리석은 일이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쓸데없는 일이라고 하고 교회에도 신앙에도 도움이 안되는 일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시고 팽목항에서 만나자고 하십니다. 부활이 기적이 필요한 곳 따뜻한 인사가 필요한 곳 바로 갈릴리에서 여러분을 초대하고 계십니다.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으면 사실 제가 대답 드리기 쉽지 않습니다. 저도 여러분하고 생각이 비슷합니다.
다만 그들에게 따스한 말 한마디 건네주는 것 그것이 부활의 증인이 되는 일일것입니다. 부활의 기쁨을 나누는 유일한 길일 것입니다. 지금 고통스럽고 아파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도 따스한 미소로 그 손을 잡으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들의 따스한 말한마디가 따스한 시선 하나가 이 땅의 고통 속으로 힘들고 아프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부활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더 이상 고통으로 이 세상에서 눈물 흘리지 않도록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그들 앞에서 펑펑 우시면서 두번 다시는 같은 울음으로 울지 않도록 시원하게 함께 울어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부활의 증인으로 세상의 따스한 모습으로 나가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박재찬 전병선 백상현 진삼열 기자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전국에서 부활절 연합예배 일제히 드려
입력 2015-04-05 1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