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살았던 A씨(여·사망 당시 88세)는 6·25전쟁이 터진 뒤 1952년 혈혈단신 월남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터를 잡고 결혼도 했지만 남편은 곧 병으로 숨졌다. 혼자가 된 그는 삯바느질 등으로 생활을 꾸리며 평생 억척스럽게 돈을 모았다. 2007년 11월 시가 7억원 집과 은행예금 8억5100만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자식이 없는데다 유언장조차 남기지 않아 15억원가량의 재산은 공중에 떴다. 월남한 5촌 조카 B씨(65)가 있었지만 생전에 특별한 친분이 없었고, 법정상속인은 4촌 이내로 제한돼 있어 상속권한도 없었다. 5촌 이상은 법원에서 부양 여부 등을 고려한 특별기여인으로 인정받아야 상속자가 될 수 있다.
이에 B씨는 변호사사무실 사무장인 김모(70)씨 등 2명과 범행을 계획했다. 그는 2008년 5월 자신이 빚을 질 때 A씨가 연대보증을 선 것처럼 대물변제 약정계약서를 위조했다. 이걸 근거로 A씨 집을 4억5000만원에 팔아 나눠 가졌다.
이 때만 해도 완전범죄로 끝날 것 같았다. 문제는 지인을 통해 A씨 사연과 함께 ‘주인 없는 재산’ 얘기를 들은 강모(66)씨가 눈독을 들이면서 시작됐다. 공문서 위조사기 전과가 있는 강씨는 2009년 4월 서울 서초구청에서 A씨의 가족관계증명서와 제적등본을 발급받았다. 이어 전문가를 동원해 공범을 A씨 친아들로 둔갑시켰다. 이들은 위조서류로 은행 3곳에서 예금 전액을 찾아 가로챘다.
강씨가 이미 예금을 가로채간 사실을 몰랐던 B씨는 A씨의 예금까지 챙기려고 2012년 법원에 ‘A씨가 예금을 물려주기로 했다’는 허위 유언장을 제출하며 유언 집행자 선임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변호사를 선임했다. 그런데 유언 집행을 하던 변호사가 은행 예금이 사라진 것을 알고 검찰에 신고했다. 검찰 지휘를 받은 서울 강남경찰서 수사 과정에서 B씨가 집을 빼돌린 사실도 들통이 났다.
경찰은 공·사문서 위조 및 행사 등 혐의로 강씨와 김씨를 구속하고, B씨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3일 밝혔다. 법원은 피의자들을 상대로 재산반환소송을 추진 중이다. 상속인이 없는 개인 재산은 국가에 귀속된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자식 없는 80대 실향민 할머니의 유산 13억원, 어떻게 됐을까요
입력 2015-04-03 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