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창단 2년차’ OK저축은행의 반란

입력 2015-04-01 21:34
막내 구단 OK저축은행은 1월 하순 올스타전 휴식 직후 유니폼을 바꿨다. 가슴에는 ‘기적을 일으키자’는 문구가 크게 새겨졌다. 세월호 희생자와 아픔을 함께하며 ‘기적을 일으키자’는 희망은 현실이 됐다. 창단 2년차인 OK저축은행이 전통의 삼성화재를 꺾고 남자프로배구 정상에 우뚝 섰다.

김세진(41) 초보 감독이 이끄는 OK저축은행은 1일 경기 안산상록수 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2014-2015 프로배구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삼성화재를 3대 1(25-19 25-19 11-25 25-23)로 물리쳤다. 3연승을 거둔 OK저축은행은 창단 2년 만에 프로배구 최고봉에 올랐다. 반면 정규리그 우승팀으로 8년 연속 우승에 도전했던 삼성화재는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정상에서 내려와야 했다. 삼성화재가 챔피언결정전에서 3연패한 것은 2006-2007시즌 현대캐피탈에 당한 이후 8년 만이다.

챔프전 최우수선수(MVP)에는 28표 가운데 16표를 획득한 OK저축은행 레트트 송명근이 선정됐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은 “무슨 마법에 걸렸는지 모든 선수가 리듬을 찾지 못하고 있다”면서 “한 세트라도 따내면 승리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삼성화재 선수들은 1, 2차전처럼 허둥대며 강호의 면모를 잃어버린 듯 했다. 범실이 잦았고, 무엇보다 리시브가 잘 되지 않아 레오의 공격정확도가 떨어졌다. 블로킹에서도 크게 뒤진 삼성화재는 1, 2세트를 내준 뒤 3세트에서 상대의 방심을 틈타 25-11로 처음 세트를 따냈지만 추격은 거기까지 였다. 4세트에서 송명근과 레오의 공격이 빛을 발한 OK저축은행은 매치포인트에서 레오의 어이없는 서브범실에 힘입어 우승을 확정지었다.

◇스승을 극복한 김세진

문자 그대로 청출어람(靑出於藍)이었다. 사제지간의 대결에서 제자가 스승을 이겼다. 김세진 감독이 1995년 삼성화재 창단멤버로 입단할 당시 스승이 신치용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이듬해 입단한 신진식(현 삼성화재 코치)과 함께 삼성화재를 단번에 정상으로 올려놓았다. 국내 최고의 라이트공격수로 활약한 김 감독은 팀이 겨울철리그 77연승을 달성하는데 선봉에 섰다. 2005년 프로배구 체제로 바뀌면서 김 감독은 2년간 프로배구에서 뛰었다. 원년 챔프전에서 우승하며 초대 MVP도 김 감독의 차지였다. 이듬해 현대캐피탈에 완패, 신 감독이 세대교체를 단행하면서 김 감독은 삼성화재와 이별했다.

김 감독은 은퇴후 활발한 방송활동을 펼쳤고, 2년전 OK저축은행(당시 러시앤캐시)이 창단 감독으로 내정됐을 때도 스승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평소 사석에서 만나면 자주 소줏잔을 기울이는 사이였지만 김 감독은 “1, 2차전을 이기면서 감히 전화조차 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신 감독은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언제가 질 텐데 기왕이면 나와 오랫동안 같이 한 사람에게 지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고 말해 패배를 예감한 듯한 발언으로 화제가 됐다.

김 감독은 삼성화재 수비의 핵이었던 석진욱 코치와 함께 팀을 조련, 우승 DNA를 OK저축은행에 성공적으로 이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왕국의 몰락

삼성화재는 10년 프로배구사에서 난공불락의 왕국을 건설했다. 지난 시즌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10차례의 모두 챔피언결정전에 진출, 8차례나 우승을 독차지했다. 한국프로스포츠 사상 유례없는 7년 연속 우승도 달성했다. 정규리그에서는 이번 시즌을 포함 7차례나 1위에 올랐다. 그동안 현대캐피탈이 7차례 도전해 2번 우승컵을 가져갔고 대한항공이 3차례 도전장을 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번 시즌에도 시즌 초 토종 거포 박철우의 입대공백에도 불구, 3월 초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짓고 8년 연속 우승을 거머쥐는 듯 했다. 하지만 쿠바 국가대표 출신 시몬의 영입으로 전력이 급상승한 OK저축은행의 패기에 밀려 정상에서 물러나야 했다.

서완석 체육전문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