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7시 서울 용산구 후암로 문화카페에 붉은 조명이 불을 밝혔다. 작은 무대 위로 가무잡잡한 얼굴의 중년 남자가 올라왔다. 이재영(54)씨. 그의 왼손에는 단소가 들려 있었다.
“거제도에서 왔어요. 한 달에 140만원 넘게 벌어 본 적이 없는데 서울 왕복 차비만 8만원이에요. 제가 큰돈을 쓰면서 이곳에 온 이유는 희망을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이씨는 양희은의 ‘아름다운 것들’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연주는 서툴렀고 음은 튀었다. 하지만 이씨가 “어차피 기대 안했잖아요. 가사 틀려도 좋으니 함께 노래해요”라고 말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30여명의 관객들은 한목소리로 노래하며 이씨의 연주에 힘을 보탰다. 카페는 작은 콘서트장으로 변했다.
이씨가 서툰 실력에도 무대에 오른 것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홈리스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제2회 노숙인창작음악제 모금을 위한 문화콘서트’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보호시설에 머무는 노숙인이었지만 그는 지난해 제1회 노숙인음악제에 참여하면서 큰 용기를 얻었다.
이후 박창윤 정유철씨의 토크콘서트가 이어졌다. 아파트 전기수리 기사인 박씨와 자전거수리공이자 연극배우인 정씨는 차분히 자신의 노숙 경험을 털어놓았다. 박씨는 “일을 하다가 한쪽 눈을 잃고 몇 차례 수술을 받다 보니 꿈과 희망이 사라져 노숙을 하게 됐다”면서 “하지만 합창단에서 연습하면서 조금씩 희망을 갖게 됐고 전기설비 자격증을 따 일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정씨는 “몇 번이나 자살하려고 한강대교를 찾아갔을 정도로 우울감이 심했지만, 다른 노숙인들과 함께 노래하고 연극 활동도 하면서 성격도 적극적으로 바뀌고 꿈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싱어송라이터 차빛나씨, 인디밴드 솔솔부는봄바람 미도 등도 노래로 콘서트를 다채롭게 했다. 이날 모은 성금은 모두 제2회 노숙인음악제 준비를 위해 사용된다.
NCCK 홈리스대책위원장 함동근 목사는 “거리에 나온 분들은 무엇보다 마음이 춥고 배고프다”면서 “이런 시간이 노숙인과 비노숙인이 소통하고 위로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
노숙인들, NCCK 도움으로 콘서트 열어
입력 2015-03-31 1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