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쿡] 보네베르거 목사와 한국교회

입력 2015-03-30 13:50

크리스토프 보네베르거(71·독일) 목사가 한국을 처음 방문했습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의 도화선이 된 옛 동독 ‘평화기도회’를 이끌던 지도자로 유명한 분이지요. 독일 통일에 기여한 공로로 1995년 독일 정부로부터 ‘대십자 공로훈장’까지 받았습니다. 우리보다 앞서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경험한 목회자라는 점에서, 분단 당시 통일을 위한 평화기도회를 통해 ‘기도의 열매’를 직접 맛본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그는 한국교회와 신학계에 이미 유명 인사로 통하고 있습니다.

보네베르거 목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3월 독일 드레스덴에서 한반도 평화통일 구상을 밝힌 ‘드레스덴 선언’ 1주년을 기념해 모 단체의 초청으로 지난 26일 입국했습니다. 다음 달 2일이 출국 예정일인데, 입국 당일부터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답니다.

특히 ‘광복·분단 70년’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는 교계에서 보네베르거 목사는 ‘0순위’ 초청 인사입니다. ‘통일을 위한 교회의 역할’ 등을 주제로 ‘살아 있는’ 경험담을 듣는 데 있어 보네베르거 목사만한 강사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미 통일과 관련된 교계의 각종 심포지엄과 세미나 강연, 특강, 예배 설교, 탈북청소년과의 만남, 명예박사 및 감사패 수여식 등 일주일 사이에 그가 참석하는 행사만 수십 군데를 헤아리는 것 같습니다.

그가 주도한 ‘평화기도회’의 역사와 진행 과정, 열매들을 공유하면서 한반도 통일의 지혜와 조언을 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한국 교계가 그를 내세우는 일에 지나치게 쏠려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슬며시 밀려듭니다. 여기저기서 그를 초청한 ‘일회용’ 행사로 생색만 내려는 분위기도 감지되고요. 그동안 교계에서 대형 행사나 기념식만 반짝 치른 뒤 후속 조치는 유야무야 흐지부지된 사례를 취재현장에서 적지 않게 봐왔기 때문입니다.

보네베르거 목사는 입국 당일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다. 짧은 일정이지만 많이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에 대해 이미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한국 교계와 비교하면 대조적이기도 하지만, “한국을 잘 모른다”는 솔직한 그의 언급이 신선하기도 합니다. ‘제3자의 시각’에서 제시되는 그의 조언과 대안이 더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붙잡은 그의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크리스천들에게는 통일을 위한 기도 외에 어떤 활동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변했더군요.

“실천적인 삶을 사는 게 중요하다. 한국 상황에서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딱 말할 수는 없지만 기독교적 삶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행동해야 한다.…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결국 ‘실천’이었습니다. 참석자가 8000명 넘게 불어난 그의 통일기도회도, 경찰의 감시와 방해를 피해 매주 월요일마다 성니콜라이 교회에 ‘직접 모였던’ 50여 청년들의 작은 실천이 낳은 기적입니다. 이미 국내 몇몇 교회에서는 연초부터 ‘한반도 평화통일기도회’라는 이름으로 기도회를 열고 있습니다. 성니콜라이 교회 기도회를 본 딴 월요기도회도 있고, 금요철야기도회를 평화통일기도회로 바꿔 기도모임을 갖기도 합니다.

많은 돈과 인원이 투입되는 ‘한 방’의 행사도 의미 없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작은 무엇이라도 통일을 위해 꾸준하게 실천해야 한다’는 게 갈라진 한반도를 향한 보네베르거 목사의 속 깊은 메시지는 아닐까요.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