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입력 2015-03-30 09:37

미국에서 발생한 119 테러사건 때 핸드폰에 남긴 마지막 말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30대의 어느 회사원은 아내를 향하여 수없이 사랑한다고 말하며 아이들을 부탁한다는 말을 합니다. 어느 채권 거래인은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마지막으로 살아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마크라는 청년은 “엄마, 내가 탄 비행기가 납치되었어, 엄마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라고 절규합니다. 어떤 남편은 피랍된 사실을 알리며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 알지요? 살아서 당신을 볼 수 있다면....”이라고 너무도 안타깝게 고백을 합니다. 죽어가는 순간에 가족에게 다 하지 못한 사랑을 후회하며 살아 돌아가면 더욱 더 사랑할 수 있을텐데 라고 외치며 고백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죽는 순간에도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애절하게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 순간에도 사랑하기를 원하며 사랑을 주고 싶어 온 마음을 다해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장면은 사랑을 받으려는 것 보다 사랑하는 것이 사람에게 더 자연스러운 일임을 보여줍니다. 사람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왜 사랑을 받지 못할까라고 생각하는 것 보다는 내가 사랑하고 있는가라고 질문하는 것이 정답을 찾을 수 있는 길입니다. 성경 전체는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하면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셔서 죄인된 우리를 용서하시고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독생자를 죽이는 죽음의 희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희생 자체이며 피를 흘리고 눈물을 흘리는 수고입니다. 예수님의 고난 자체가 우리를 향한 사랑의 증거입니다. 우리의 사랑의 모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죽이기까지 희생하며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사랑은 생명을 낳게 됩니다.

어느 시골에서 한 아들이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오셔서 마지막 기도를 하며 간절히 그의 생명을 위해 간구하셨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이미 그 청년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하여 알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간절히 기도를 끝낸 목사님은 이제 정리하는 결단을 내리고 그 식구들을 위로하고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모두가 죽는 것으로 결론 내린 아들을 따뜻한 자리에 눕히고 담요로 아들의 몸을 둘둘 말고는 밤새도록 끌어 안고 기도하였습니다. 새벽녘이 되어갈 무렵 그 아들이 신기하게도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살아난 것입니다. 사랑은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며 간절히 소망하게 하는 힘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두가 포기하고 더 이상 안 된다고 절망하는 지점에서 소망을 보는 것이요 희망을 끌어안는 것입니다. 도저히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는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을 살리는 것도 사랑이라는 이름의 소망에서 시작됩니다. 모두에게 상처를 주고 괴롭히며 미움을 받는 사람이 변할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은 바로 그를 깊이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게 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의 정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사랑을 해 본 사람은 어렴풋이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됩니다. 성경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행위이며 하나님께로부터 우리가 나왔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행동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아는 자이며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믿는 다고 말하며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감정으로만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은 느낌이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서적인 차원의 느낌은 존재를 향해 표출되는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사랑을 표현할 때 느낌에 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존재적인 힘을 발생시키면서 다른 존재를 향해 움직이는 운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느낌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근거를 갖는 운동 가운데 일어나는 에너지인 것입니다. 이 힘은 생명의 에너지입니다. 사랑 하는 그 순간에 우리는 재결합을 위한 열망을 예기하게 되며, 재결합을 위해 분출되는 에너지들은 사랑의 행동들을 통해 서로를 강하게 결합시키는 행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하고 부부의 관계를 맺으며 결합되어지고, 교회의 지체가 서로 사랑하며 한 몸이신 그리스도를 이루기 위해 결합되어가는 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이러한 힘이 느낌만의 사랑을 승화시켜 존재적인 행위를 이루는 사랑이 되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삶의 의미로 충만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우리 기독교인은 사랑이신 하나님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해 경험했습니다. 이제 우리도 서로 사랑한다고 마땅히 고백해야할 것입니다.



전용란 목사(대전 건신대학원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