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밀월 기댄 아베, 강제동원 희석 노골화하나

입력 2015-03-29 21:33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7일(현지시간)자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의 희생자’라고 표현한 것은 그동안 한국과 중국의 숱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위안부에 관한 한 그의 근본적 인식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게다가 주변국의 비판을 충분히 예상하고도 이런 표현을 ‘대놓고’ 거론한 것은 ‘미·일 간의 신(新)밀월 시대’에 기대 위안부 강제동원의 역사적 사실을 희석시키는 작업을 더욱 노골화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WP 인터뷰를 들여다보면 아베는 굳이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어도 됐다. 질문자 역시 ‘위안부’라는 말은 일절 꺼내지 않고 ‘당신은 역사 수정주의자냐’고만 물었다. 역사 수정주의자는 과거의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에 아베는 처음에는 자신의 내각은 1995년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를 담은 무라야마(村山) 담화, 또 이와 비슷한 내용의 2005년 고이즈미(小泉) 담화를 계승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위안부 동원에 대한 사죄를 담은 1993년의 고노(河野) 담화도 재검증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아베는 그런 뒤 위안부 문제를 별도로 언급하며 문제의 표현을 꺼냈다. 그는 “진신바이바이(인신매매·人身買賣)' 희생자인 위안부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아프다(my heart aches)”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아베는 지금까지 위안부 동원 주체가 민간업자들이었다고 주장해왔다.

‘가슴이 아프다’는 표현 역시 아베 정권의 전매특허격인 표현이다. 앞선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민주당 내각은 2012년 제출한 유엔보고서에서 위안부 동원에 대해 ‘사과와 반성(apology)’이란 표현을 썼으나 아베 정권 들어서는 ‘고통을 느낀다’ ‘가슴이 아프다’ 등으로 마치 제3자인양 이 문제를 거론해왔다.

아베의 이번 도발은 그가 2007년 1차 내각 총리 때 “위안부의 강제성을 증명하는 증언은 없다”고 주장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이후 8년이 지나고 아베 내각이 3차 내각을 맞이했지만 여전히 ‘2007년식(式)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아베는 이후 2차 내각에선 위안부 강제동원을 지적한 기사를 썼던 아사히신문으로 하여금 자사 기사가 오보임을 시인케 하는데 주력해왔고, 강제동원 내용을 담은 자국 교과서 내용 수정에 매달려왔다.

아베의 ‘방미(訪美)용 인터뷰’는 위안부 강제동원에 관한 미국 내 비판 여론을 희석시키겠다는 목적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일 정부와 우익 단체들은 위안부 강제동원을 묘사한 미국 내 교과서와 각종 자료의 수정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는데, 아베가 이에 힘을 실어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미국이 일본과의 새로운 경제·안보 밀월관계 때문에 일본을 비판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몰린 점을 교묘히 활용했다는 지적도 있다. 아울러 반대여론이 많은 그의 미 상·하원 합동연설을 앞두고 ‘가슴이 아프다’는 말로 ‘립서비스’를 하려 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