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이 울면서 청주 흥덕경찰서를 찾아온 건 지난달 14일 저녁이었다. 이 20대 여성은 “버스에 놓고 내린 카메라가 사라졌다”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잃어버린 카메라가 시가 70만원 정도로 고가이기는 했지만 그가 우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카메라에는 최근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영정사진이 저장돼 있었다. 생전 잘해드리지도 못했는데 그 마지막 모습까지 잃어버린 데 대한 자책감이 여대생을 울려버린 것이었다.
카메라가 사라진 시외버스는 앞서 오후 6시36분 흥덕구 청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여대생은 이 버스를 내리면서 카메라를 챙기지 못했다. 뒤늦게 알아채고 돌아왔을 땐 카메라가 없었다. 경찰은 그 시간 이후의 주변 CCTV 녹화영상을 분석했다. 과연 카메라를 들고 가는 한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가 누군지 알아내는 데는 한 달 정도 걸렸다. 경찰은 그의 행적을 좇아 대전과 전북 전주를 오가며 탐문을 벌였다.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확인한 뒤에야 신원이 밝혀졌다. 경찰은 지난 16일 이 남자를 점유이탈물 횡령 혐의로 검거했다. 길바닥에 떨어진 물건이라도 주인 허락 없이 가져가면 불법이다. 카메라는 아직 저장돼 있는 할머니 사진과 함께 여대생에게 돌아갔다.
경찰은 최근 이런 생활범죄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소지품 도난을 비롯한 생활범죄는 강력범죄에 비하면 피해 규모가 작지만 일상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만큼 체감도가 높다. 경찰은 이 점을 감안해 전국 주요 경찰서에 생활범죄수사팀을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했다. 여대생의 카메라를 찾아준 것도 생활범죄수사팀이었다.
전남 순천경찰서 생활범죄수사팀은 지난 19일 한 할머니가 잃어버린 스마트폰을 찾아 돌려줬다. 이 여성은 11일 경찰서를 찾아와 “딸이 난생 처음 사준 휴대폰을 택시에 그냥 놓고 내렸다. 꼭 찾아 달라”고 했다. 그 역시 울먹이며 사정했다고 한다. 경찰은 이틀간 할머니가 택시를 타고 내린 장소 주변 CCTV 영상을 분석해 용의 차량을 찾아냈다. 차번호는 알 수 없었지만 택시 회사를 상대로 이동경로를 확인해 피의자를 특정했다.
이밖에 경찰 생활범죄수사팀은 약 4년간 자전거 74대와 의류 400여점을 훔쳐 판 피의자를 붙잡아 구속하고, 식당에 위장취업해 오토바이와 현금 등을 상습적으로 훔친 배달원을 검거하기도 했다. 도난품에는 저마다 피해자들의 간곡한 사연이 담겨 있었다.
경찰청은 이렇게 생활범죄수사팀이 설치된 전국 1급지 경찰서 55곳에서 지난달 1일부터 지난 19일까지 729명을 검거해 이 중 26명을 구속했다고 29일 밝혔다. 이 기간 절도 검거율은 51.8%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2% 포인트 높았다.
처리된 사건은 1419건으로 절도(750건)가 절반 이상이었다. 이어 점유이탈물 횡령 83건, 폭행·상해 80건, 재물손괴 69건 등이었다. 기타 사건 437건은 남의 신용카드를 훔치거나 주워 결제에 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절도품은 자전거(126건)와 오토바이(66건)가 가장 많았다. 빈 차를 터는 차량절도도 198건에 달했다. 피의자는 10대 175명, 20대 139명, 50대 125명, 40대 114명, 30대 94명, 60대 이상 82명 순이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생활범죄수사팀 운영 현황을 면밀히 분석하고 개선점을 찾아 더 효율적인 수사체제를 갖춰 나갈 계획”이라며 “작은 범죄라도 사실관계를 밝혀내고 피해를 회복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할머니 영정사진 담긴 여대생 카메라 실종사건
입력 2015-03-29 1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