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저먼윙스 여객기 추락 사고가 조종실 문을 안에서 잠근 부기장의 ‘자살 비행’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유력한 자살 동기로 우울증 등 정신적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27일(현지시간) 부기장인 안드레아스 루비츠(28)의 뒤셀도르프 집을 압수수색한 독일 경찰은 “루비츠의 정신과 의료기록을 발견했고, 분석에는 시일이 더 소요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루비츠가 1년 6개월이나 우울증 치료를 받았고,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와 최근 결별했다는 보도도 잇따르면서 의혹은 증폭되고 있다.
독일 일간 빌트는 저먼윙스 모회사인 루프트한자항공 소식통과 내부 자료를 인용해 루비츠가 지난 2009년 비행 조종 훈련을 받던 기간 우울증을 앓아 ‘조종 불가’ 판정을 받는 등 오랜 기간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다고 보도했다. 또 독일 연방항공청이 관리하는 그의 신상기록에는 정기적 병원 검진이 필요하다는 ‘SIC’ 코드가 적혀있었다고 전했다.
앞서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도 루비츠의 과거 학교 여자 동료가 자신의 엄마에게 루비츠가 조종 훈련을 받던 기간 우울증을 앓아 쉬었던 적이 있었다며 “과중한 피로 때문에 루비츠가 우울증에 빠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은 압수수색한 아파트에서 루비츠가 여자친구와 동거했다는 점과 “그가 인간관계에 위기를 겪고 있었다”는 독일 언론의 보도를 전하면서 최근 실연을 당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미국 CNN방송은 루비츠가 기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자동조종장치를 재설정해 고도를 급격히 낮춰 산맥으로 향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CNN에 따르면 항공기 위치분석 사이트인 플라이트레이더24의 사고기 관련 자료에는 부기장이 조종실에 혼자 남은 상태에서 자동조종장치에 여객기 고도를 3만8000피트(약 1만1582m)에서 100피트(약 30m)로 낮추도록 설정한 뒤 장치를 작동시킨 것으로 나타나 있다. 기장이 조종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도끼로 문을 부수려 했다는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사고 당시 조종실 안에 한 명의 조종사만 남아있었고 이 때문에 단독 행동이 가능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각국 항공사들은 조종실 규정 강화 방침을 밝혔다. 독일 항공업협회(BDL)는 성명을 내고 조종실 2인 규정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유럽 저가 항공사인 이지젯과 노르웨이 에어셔틀을 비롯해 에어캐나나, 에미레이트항공 등도 같은 방침을 밝혔다. 미국 항공사의 경우 2001년 9·11테러 이후 조종사 2명 중 1명이 조종실을 벗어나면 다른 승무원이 대신 조종실에 들어가 조종실에서 항상 2명이 자리를 지키도록 하고 있다.
보안이 강화된 출입문 통제 시스템 때문에 조종실 밖으로 나왔던 기장이 다시 조종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테러 상황을 막기 위해 조종실에 장착된 출입문 통제 시스템은 조종사가 조종실 안에서 움직일 수 없거나 정신을 잃는 등의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밖에서 비상코드를 입력하면 열 수 있도록 돼 있다. 다만 이때 출입문 통제 스위치는 ‘기본(NORM)’으로 설정돼 있어야 한다. 조종실 안에 있는 사람이 깨어 있어서 시스템을 ‘잠금’ 상태로 돌리면 비상코드를 입력해도 밖에서 문을 열 수 없도록 설계돼 있다.
미국 국가안보분석가 줄리엣 카옘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CNN에 “조종사들이 여객기를 추락시킬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보안 대책을 마련해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부기장 장기간 우울증 치료 받아...'조종 불가' 판정도
입력 2015-03-27 21:18 수정 2015-03-27 2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