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여객기 추락] 부조종사 ‘자살 비행’ 우울증·여친과 결별 때문에?

입력 2015-03-27 17:52

독일 저먼윙스 여객기 추락 사고가 조종실 문을 안에서 잠근 부조종사의 ‘자살 비행’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가 무슨 이유에서 사고기의 고도를 낮췄는지에 대해 독일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부조종사인 안드레아스 루비츠(28)의 뒤셀도르프 집에서 컴퓨터 등을 압수수색한 독일 경찰은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다”며 “유서는 아니다”고 밝혔다. 루비츠가 2008년 조종 훈련을 받던 기간 우울증을 앓아 쉰 적이 있었다는 동료의 증언과 내년 결혼을 앞두고 있던 여자친구와 최근 결별했다는 보도도 나와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은 26일(현지시간) 루비츠의 과거 학교 여자 동료가 “과중한 피로 때문에 루비츠가 우울증에 빠졌던 것 같다”며 자신의 엄마에게 말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엄마는 자신의 딸이 지난해 성탄절 전에 루비츠를 다시 만났을 때는 정상적이었다고 덧붙였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은 압수수색한 아파트에서 루비츠가 여자친구와 동거했다는 점과 ”그가 인간관계에 위기를 겪고 있었다”는 독일 언론의 보도를 전하면서 최근 실연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CNN 방송은 루비츠가 조종사(기장)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자동조종장치를 재설정해 고도를 급격히 낮춰 산맥으로 향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CNN에 따르면 항공기 위치분석 사이트인 플라이트레이더24의 사고기 관련 자료에는 부조종사가 조종실에 혼자 남은 상태에서 자동조종장치에 여객기 고도를 3만8000피트(약 1만1582m)에서 100피트(약 30m)로 낮추도록 설정한 뒤 장치를 작동시킨 것으로 나타나 있다.

사고 당시 조종실 안에 한 명의 조종사만 남아있었고 이 때문에 단독 행동이 가능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각국 항공사들은 조종실 규정을 강화할 방침을 밝혔다. 독일 항공업협회(BDL)는 성명을 내고 조종실 2인 규정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유럽 저가항공사인 이지젯과 노르웨이 에어 셔틀을 비롯해 에어 캐나나, 에미레이트항공 등도 같은 방침을 밝혔다. 미국 항공사의 경우 2001년 9·11 테러 이후 조종사 2명 중 1명이 조종실을 벗어나면 다른 승무원이 대신 조종실에 들어가 조종실에서 항상 2명이 자리를 지키도록 하고 있다.

보안이 강화된 출입문 통제 시스템 때문에 조종실 밖으로 나왔던 조종사가 다시 조종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테러 상황을 막기 위해 조종실에 장착된 출입문 통제 시스템은 조종사가 조종실 안에서 움직일 수 없거나 정신을 잃는 등의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밖에서 비상코드를 입력하면 열 수 있도록 돼 있다. 다만 이 때 출입문 통제 스위치는 ‘기본(NORM)’으로 설정돼 있어야 한다. 조종실 안에 있는 사람이 깨어 있어서 시스템을 ‘잠금’ 상태로 돌리면 비상코드를 입력해도 밖에서 문을 열 수 없도록 설계돼 있다.

항공사에서 실시하는 조종사 정신 감정이 ‘무용지물’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영국 BBC방송은 항공사의 종합검진에는 정신감정 요소도 포함돼 있지만 검사가 지원자의 대답에만 의존해 이뤄지는 데다 정신 상태는 계속 변하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미국 국가안보분석가 줄리엣 카옘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CNN에 “조종사들이 여객기를 추락시킬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보안 대책을 마련해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