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은 27일 서울 송파구 잠실관광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의성을 떠나 이런 사태(도핑 파문)가 발생한 점을 사과한다”며 “이유가 무엇이든, 사정이 어떻든 모두 내 불찰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뼈저리게 반성한다”고 말했다.
박태환은 인천아시안게임이 열린 지난해 9월 국제수영연맹(FINA)의 도핑테스트에서 세계반도핑기구(WADA) 금지약물인 테스토스테론 성분의 양성 판정을 받았다. 테스토스테론은 근육강화제의 일종이다. 박태환은 같은 해 7월 말 서울 중구이 한 병원에서 맞은 ‘네비도(nebido)’ 주사제 때문에 도핑테스트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박태환의 소속사는 보도자료를 내고 “한 병원에서 척추교정치료와 건강관리를 받다가 주사를 맞았다. 이 주사에 금지약물 성분이 포함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주사의 금지약물 성분 여부를 병원에 물었지만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박태환 측은 지난 1월 병원장 김모씨를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병원 측의 과실이 있어도 도핑 적발의 면책 사유는 되지 않는다는 WADA 규약에 따라 박태환은 징계를 피할 수 없었다. FINA는 지난 23일 스위스 로잔 사무국에서 청문회를 열고 박태환에게 18개월 자격정지 징계를 내렸다.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획득한 은메달 1개와 동메달 5개, 상금도 몰수당했다. 다만 징계기간이 예상보다 줄어들어 2016 리우올림픽 출전 여지는 남았다.
박태환은 도핑 적발과 FINA 청문회 과정에서 받았던 심적 고통을 토로했다. 그는 “도핑 사실을 알고 매일 지옥과 같았다. 처음엔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때 병원에 가지 않았다면, 주사를 맞지 않았다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떨까’ 하고 후회했다”며 “청문회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도 ‘왜 너와 같은 선수가 몸에 그런 성분이 들어오는 것을 방치했느냐’였다”고 했다.
이어 “수영만 알고 살았던 내가 (당분간) 수영을 할 수 없게 됐다. 내가 선수로서 얼마나 부족한지, 얼마나 과분한 사랑을 받았는지 생각했다. 혼자만의 능력이 아닌 국민의 사랑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잘할 때나 못할 때나 믿어주고 응원해준 국민에게 실망과 심려 안겨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차분하게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던 박태환은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지난 일들을 ‘약쟁이’로…”라고 말하는 순간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박태환은 흐르는 눈물을 삼키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말을 이어간 박태환은 “(약쟁이로) 치부되는 것에 대해 억울하지 않느냐고 한다. 반드시 재기하란 말도 들었다. 모든 말을 깊이 새겨듣고 있다”면서 “이 모든 것은 제가 평생 스스로 감당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리우올림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박태환은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도, 가슴 아픈 순간도 있었다. 모두 수영을 하면서였다. 힘들어도 행복했다”며 “수영선수로 자격을 상실하는 18개월은 나에게 가장 힘든 시간이 될 것이다. 봉사하는 시간들로 채우겠다. 올림픽이나 메달이 목표가 아니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올림픽 출전보다는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주력하겠다는 의미다. 이어 “선수로서 좋은 경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씻을 수 없는 과오로 미래를 말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일정은 대한수영연맹 등과 논의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박태환은 연맹 관계자, 대표팀 동료, 팬들에게 감사를 전한 뒤 일어서서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