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칼럼] 만날 때와 헤어질 때

입력 2015-03-26 13:11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다양한 인연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가볍게 옷깃을 스치고 지나간 기억조차 없는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한평생 한 지붕 아래에서 한 솥 밥을 먹으며 고락을 함께 하는 부부의 숙명적인 만남에 이르기까지 실로 숱한 만남의 인연을 맺으며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가운데는 주소나 직장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름이나 얼굴 등 가장 기본적인 신상 정보조차 잊어버린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정보들은 재생되지 않으면서도 어렴풋이나마 어떤 일화나 아름다운 추억 그리고 함께 나누었던 고락의 정이 문득 환기되곤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특별한 인연으로 만나 특별한 체험을 함께 했던 병영 생활의 동료들이나, 회사 설립 초창기에 어려운 상황에서 시장 개척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나와 내 동료들에게 호의적으로 관심을 가져 주신 분과 경쟁사와 적대적 감정을 가지고 대립하던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를 좋아하고 사람들과 만나기를 더 더욱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교제하는 가운데 즐거움을 얻고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며 때로는 그들 때문에 고민하기도 하지만 서로 알고 지냈던 사람을 특별한 이유도 없이 멀리한다거나 의도적으로 인연을 끊거나 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옷은 새 옷이 좋고 사람은 옛 사람이 좋다’는 우리 조상들의 가르침이야말로 우리가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진리라고 생각한다. 즉 옷은 깨끗한 것이 좋지만 사람은 오래 사귀어 서로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좋은 법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과의 만남을 소중한 인연으로 길이 이어가고자 애쓰며 살아왔다.

특히 회사 사원들에 대하여는 때로는 친형제 자매처럼 친숙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에서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어 보이기 일쑤였고 때로는 친자식처럼 보살펴 주고 싶은 마음에서 필요 이상의 노파심을 피력하기도 한다. 나의 진정을 이해하고 받아 준 사랑하는 우리 사원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눔과 베풂의 삶을 실천하고자 나름대로 고심·노력하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인생에는 이러한 만남의 인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연이 끊어지거나 인연을 끊고 사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여러 가지 사연으로 서로 그리워하며 헤어져 사는 가족들을 비롯하여 자식을 낳아 버리는 비정한 부모들 그리고 이해관계로 만났다가 이해관계 때문에 헤어지는 개인이나 집단들이 바로 가까운 예이기도 하다. 그리고 유인한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의 인연은 언젠가는 반드시 끊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회자정리(會者定離)’ 라 일러 왔다. 그렇다. 나도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되풀이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즉 두말할 것도 없이 헤어지기보다는 만나는 것이 좋은 일이지만(헤어짐만 못한 불행한 만남을 제외하고) 때로는 헤어짐을 통해 만남보다 훨씬 더 가슴 뭉클한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함께 있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진면목을 헤어지고 나서야 발견하는 감동적인 경우가 꽤나 많았던 것이다. 그럴 때면 으레 함께 있을 때 좀 더 잘해 주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과 더불어 그 사람의 온 몸으로부터 풍겨 나오는 인간적인 체취가 내 마음 구석구석으로 하염없이 젖어들곤 하였다.

그런가 하면 함께 있을 때는 언제나 내 주변을 맴돌며 해맑은 웃음으로 다가오곤 하다가 어느 날인가 예고도 없이 바람처럼 훌쩍 떠나간 다음 우연한 자리에서 서로를 발견하곤 눈길이라고 마주치게 되면 재빨리 가슴에 매달린 ‘배반의 장미’를 만지작거리며 쌀쌀히 고개를 돌리곤 하던 사람들도 더러 있다. 물론 그것은 나의 일방적인 속단일 수도 있고 내가 받았던 인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따라서 나는 그것이 제발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고 그 사람 또한 나에게 새로운 발견을 안겨 주며 예전의 그 해맑은 웃음으로 다가오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보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이해관계가 있을 때 좋은 인간관계를 소중히 한다. 그러나 이해관계를 떠나 헤어질 때를 더욱 소중히 해야 하고 헤어져 있을 때 더욱 소중히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이해관계가 있을 때는 간이라도 빼어줄 듯 충성을 하다가도 헤어질 때는 언제 그랬느냐는 사람들도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런 부류들은 뒤돌아선 후 먹던 물에 침을 뱉고 그 집단을 배신하는 행위를 한다.

먼 훗날에 뒤돌아보면 아주 작은 이익 때문에 몰염치한 행동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평생의 인간관계에 오점을 남기는 경우도 가끔은 눈에 띈다.

교회와 어느 단체에서 조직을 떠나갈 때 두 가지 부류를 만난다. 조직에 많은 도움을 준 공로자들은 한결같이 많은 것을 배웠으며 감사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그들은 예외 없이 조직을 떠나서도 애정을 갖고 다가온다. 별로 도움도 되지 못하고 오히려 폐가 되었다거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공치사는 더 많다. 모든 게 자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처럼······. 그리고 그들은 예외 없이 조직을 비방하고 손해를 끼치려 한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만남 그 자체가 아니라 만난 사람들이 자신들의 만남을 소중한 인연으로 생각하고 그들과 함께 영원한 이웃이 되도록 하여야 하며 더욱 중요한 것은 불가피하게 헤어졌다가 다시 만날 때 새로운 만남에 기쁨을 누리며 옛 정을 이어갈 수 있도록 서로의 뜻과 힘을 모아 하나님 앞에 서는 날 까지도 함께 하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안기호 장로(대전시 장로연합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