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 일본대사관 홈피 “아시아 번영은 일본의 원조로 창출” 물의

입력 2015-03-24 17:22
주미 일본대사관 홈페이지 캡처

주미 일본대사관(대사 사사에 겐이치로)이 홈페이지에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 후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창조했다”는 홍보 동영상을 올려 논란이 일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일본대사관 홈페이지의 ‘전후시대의 국가건설: 책임 있는 파트너로서의 일본(Nation Building in the Post War Era: Japan as a Reliable Partner)’동영상을 보면 “전쟁이 끝난 뒤 일본은 경제를 재건했고, 아시아에서 평화와 번영을 창조하기 시작했다”고 돼 있다.

이어 “일본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협정을 체결해 국제사회로 복귀한 뒤 1954년부터 아시아에 대한 원조를 시작했다”면서 일본이 아시아에 제공한 공적원조(ODA)를 열거했다. 한국의 포항제철, 중국 베이징-칭다오간 고속도로,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 항만, 인도의 철도 등의 화면을 보여주며 일본의 ODA가 아시아국가들의 인프라 건설을 지원했고, 경제발전의 토대를 닦았다고 자화자찬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지하철 1호선, 소양강댐 건설 사진도 포함됐다.

2분 분량의 이 동영상은 일본 외무성이 2월 5일자로 제작했으며 유튜브로 연결돼 인터넷으로 전세계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했다. 아시아 각국에 대한 일본의 원조를 집중 부각한 이 동영상은 영어는 물론 한국어, 불어, 서반아어 등 10개국 언어로 제작됐다. 이날 밤 현재 유튜브에는 720여명이 이 동영상을 시청한 것으로 돼 있다.

동영상 후반부 1분가량은 일본의 평화유지활동(PKO)과 아프가니스탄 재건 노력 등을 소개했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해 엄청난 고통을 주고 파괴를 자행한 사실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인들이 이 동영상만 볼 경우 일본이 ‘아시아의 구세주’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동영상은 경제개발 지원국가라는 점을 부각시켜, 전범 국가라는 일본의 국제적 이미지를 은폐시키려는 의도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 외무성이 제작한 이 동영상이 주요국 대사관 중 유독 주미 일본대사관 홈페이지에만 올려진 것은 다음달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미국 방문을 홍보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 소식통은 “아베 총리를 비롯한 현 일본 지도층의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인식과 역사 의식이 얼마나 천박한 수준인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고 비난했다.

이 소식통은 “다음달 29일 워싱턴 방문기간 중 사상 최초로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 나서는 아베 총리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생략한 채 아시아에서의 일본의 역할을 강조하려는 속내가 반영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