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그리스, 겉으론 웃었지만… 구제금융, 2차 대전 배상 등 감정 격해 살얼음판

입력 2015-03-24 17:31
독일과 그리스가 겉으로는 협력을 외치면서도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는 모양새다. 구제금융을 위한 그리스 경제 개혁과 제2차 세계대전 피해 보상 문제로 감정이 격해져 있던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첫 만남에서 대화는 시종일관 겉돌았다.

치프라스 총리와 메르켈 총리는 23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이 협력을 강화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발언 내용과 회담장의 분위기를 들여다보면 두 정상은 지금까지 해왔던 자신의 주장을 양보하지 않아 이날의 만남이 화해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라는 분석이 만만찮다.

메르켈 총리는 정상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오늘 회동으로 두 나라는 협력의 욕구를 확인했고 일부 주제에 이견이 있지만 함께 일하려는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구제금융 지원조건인 그리스의 개혁 조치와 자금 지원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진 발언은 그간의 입장과 같았다.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가 경제적으로 강해지기를 바라고 성장하기를 바라며, 무엇보다 높은 실업률을 극복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구제금융을 연장하고 추가 지원을 받으려면 개혁을 통해 결과물을 내놓으라는 직접적인 압박이었다. 메르켈 총리는 그간 “그리스의 개혁 없이 추가적인 지원은 없다”는 입장에서 한 번도 물러선 적이 없다.

치프라스 총리는 우리는 양국 간 현안과 유럽의 미래와 관련한 공통된 문제들의 시각을 교환했다”면서 “그리스인은 게으르다는 (독일의) 편견이나 그리스 문제의 책임이 독일에 있다는 식의 서로에 대한 편견을 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돈줄이 막힌 치프라스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그리스에 입힌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얘기를 이 자리에서 다시 꺼냈다. 메르켈 총리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치프라스 총리는 “전쟁 피해 보상 요구는 물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인 문제”라면서 자극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 측의 요구를 무시하지 않고 계속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불편한 표정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분위기에 대해 “통일된 독일에 한 나라의 수장이 전쟁 피해 배상 요구를 하러 간 것은 처음이었다”면서 “돌처럼 굳은 얼굴의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에 ‘구제금융 연장을 위해선 개혁을 해라’라는 말을 되풀이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전쟁범죄에 대해 끊임없이 사과하면서 유럽 경제를 이끌고 있는 독일이 ‘유럽의 문제아’ 그리스의 이 같은 요구를 기분 좋게 받아들일 리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독일 일간 빌트는 그리스의 요구를 ‘협박’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유럽 이사회의 국제관계 전문가 한스 쿤드나니의 말을 인용해 “현재 독일인들은 ‘독일의 돈을 강요하는 구실’로 과거사를 이용하는 다른 국가들 때문에 벌어진 유럽의 경제 위기를 자신들이 해결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피해자’로까지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