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에 접어 들어 세계는 여러가지 혁명으로 시끄러웠다. 2011년대부 시작하여 부의 재분배를 외치며 거리고 나선 월가(wall street)의 시위하는 젊은이들을 보았을 것이다. 아랍의 봄을 외치며 소리를 높였던 이들과 홍콩의 민주화를 주창한 우산혁명단원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모두 하나되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는 점이다. 모두 다른 모습임에도, 다른 이해관계를 가졌음에도 한가지 목적으로 뭉쳐 세상을 뒤흔들었다. 필자는 이들을 보며 교회들의 연합이 어떤 면에서 이들과 같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작금의 교회는 상처 투성이이다. 분열되다 못해 찢겨져 있다. 정치적 이념으로 나뉘어져 있고, 이권 다툼 때문에 나뉘어져 있다. 또한 교회의 규모와 지역에 따라서도 나뉘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다. 물론 필자는 80년대 대한민국에 일어난 부흥을 떠올린다. 여의도 광장에 모인 일백만명의 성도가 한 목소리로 찬송하고 기도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들에게 이러한 연합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고, 또한 여기서 말하는 연합이란 단회적인 부흥집회의 차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뉴욕의 저명한 학자이자, 리디머 교회의 담임목사로 뉴욕 한복판에서 놀라운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팀 켈러는 현대의 복음전파는 ‘운동(movement)’과 같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월가를 점령한 시위대들은 빈부격차의 해소,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금융권력의 집중, 정치인들의 부패를 각성할 것을 외치며 나섰다. 웹사전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미국 사회의 경제 불안과 부조리에 항의하는 ‘고학력 저임금 세대’ 30여명이 월가에서 처음 시위를 벌였다. 2011년 9월에 시작한 이 혁명은 2012년 10만명 이상의 거리 행진으로 발전되었고, 전세계 80여개국 1,500개 도시에서 이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세상은 생존의 문제에 있어서,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잡는 데에 있어서 하나가 되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영혼을 살리는 데에 초점을 맞춘 집단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과 죽어하는 영혼들을 살리는 데에 하나가 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나? 필자는 한국교회에 하나됨의 연합 운동의 불이 지펴지기를 기대한다. 이념을 뛰어넘어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이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을 점령하기를 기도한다.
성경은 우리가 연합해야 하는 이유들을 분명하게 제시하는데, 그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삼위일체 하나님이 한 분이시다. 세분이면서 한분이신, 한분이면서 세분이신 이 놀라운 신비는 그리스도인의 신앙하는 바 중 하나이다. 연합한다는 것은 혼란이라기 보다는 신비로운 일이다. 어떻게 정의내릴 수 없는 오묘한 일이다. 덴버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정성욱교수는 그의 책에서 삼위일체를 ‘다양성과 통일성’, ‘상호 내주’ 혹은 ‘상호 참여’, ‘코이노니아’(친밀한 사귐과 교제) 라고 설명하며 하나님은 그의 삼위일체 속에서 친밀한 사귐과 교제의 하나됨을 친히 본을 보이셨다고 말하고 있다.
교회들은 세 분 하나님이 한 분 하나님이셨던 것처럼 하나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그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을 추구하는 공동체이다. 초대교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에의 회복을 경험한 이들이 각 지역에 흩어져 복음을 나누는 작은 공동체들의 연합이었다. 저마다 다른 상황과 환경, 저마다 겪는 다양한 핍박들 속에서도 그들은 하나 되었다.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해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그들은 한 목소리를 냈다. 모두 함께 하나되어 올라가신 그대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렸다.
에스겔서 37장에 하나님은 마른 뼈 환상과 더불어 두 막대기 환상을 통해 에스겔선지자에게 온 이스라엘 민족의 연합을 보게 하셨다. 이 두 환상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말씀이다. 연합은 회복의 시작이다. 하나님은 분명 교회들을 통하여 이땅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지난해 지역의 기독교총연합회장으로서 필자가 섬기는 지역에서 750여 교회들과 함께 연합사역을 하며 느낀 점들은 다음과 같다. 바로 달라도 하나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 이념이 달라도 연합할 수 있었으며, 교회의 규모가 달라도 함께 할 수 있었다. 이 땅의 교회들을에게는 나뉨이 아닌 사귐이 필요하다. 하나 됨이 필요하다. 거기서 부터 대한민국과 세계 열방의 회복은 시작될 것이다.
한상익 목사(천안 든든한교회)
[목회자칼럼] 연합은 신비롭고 오묘한 일
입력 2015-03-24 1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