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논설위원의 ‘그 숲길 가보니’] 봄이 오는 길목, 청산도에서

입력 2015-03-23 21:49 수정 2015-03-23 23:24

봄이 오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느림의 섬’ 청산도 가는 뱃길은 잔잔했다. 이틀간 부슬부슬 내린 비가 그친 지난 2일 날이 무척 맑았다. 가시거리는 줄잡아 20㎞. 전남 완도군 청산면 청산도는 참 복 받은 섬이다. 완도로부터 배를 타고 50분 걸리는 곳이니 ‘섬다움’을 유지할 만큼 적당히 육지와 떨어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육지에서 그다지 멀지도 않은 아름다운 섬이다. 이제 4월이 되면 관광객과 걷기 마니아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 것이다.
관광지로서 청산도는 요즈음 뜬다고 하는 스펙을 모두 갖추고 있다. 슬로시티 인증(느림과 웰빙)을 받았고, 섬을 일주하는 42.195㎞(마라톤코스 거리)의 ‘슬로길’은 ‘세계슬로길 제1호’로 지정됐다.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발걸음이 저절로 느려진다고 해서 슬로길이란다. 완주하는데 2박3일이 걸린다(걷기 열풍). 서편제 촬영무대(드라마, 한류)가 됐던 유채꽃과 청보리밭 길, 유유자적의 공간,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된 구들장논과 같은 역사유적(스토리텔링) 등도 그렇다. 게다가 오늘처럼 날씨까지 좋아서 슬로길을 걸으며 쪽빛 다도해에 보석처럼 떠 있는 섬들을 바라보면 부러울 게 없다.

◇ 영화(映畵) 속의 청산도, 청산도의 영화(榮華)
완도여객선터미널에서 카페리를 탄다. 건조된 지 2년밖에 안 된 최신형 선박이다. 아직 성수기도 아닌데 늦게 갔더니 차를 실을 공간이 없어서 못 실었다. 50분 만에 도청리 선창가에 도착했다. 도청항 방문자센터에서 도락리 안길로 이어지는 미항길은 관광객, 상인, 주민, 그리고 청산도 특산물이 한데 모이는 곳이다. 도락리에는 바다가 육지 안으로 쑥 들어와 있기 때문에 전복 가두리양식을 한다. 이곳 사람들은 전복 아파트라고 부르는데 300채 이상 양식을 해야 부자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당리 입구에 도착하면 한국영화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서편제 촬영지가 펼쳐진다. 송화와 유봉, 그리고 동호 등 주인공 세 사람이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구불구불한 돌담길을 걷는 장면을 이곳에서 찍었다. 봄에는 노란 유채꽃과 파란 청보리,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코스모스가 길옆을 수놓는다. 임권택 감독은 황토흙길과 노란 유채꽃이 조화를 이룬 이 장면을 당초 계획보다 배 이상 긴 5분30초의 롱테이크로 찍었다. 그 동안 진도아리랑 전곡이 연주됐다. 언덕 위에는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이 한 폭의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다. 당리는 과거 청산진성이 있던 곳으로 한때 군인이 450여명이 주둔할 정도의 전략적 요충이었다.

◇ 물고기떼와 함께한 섬의 영고성쇠
우리나라의 크고 아름다운 섬들이 다 그렇듯이 청산도도 드라마틱한 영고성쇠를 겪었다. 과거 도청리는 고등어 파시로 유명했다. 서해에 연평도 조기 파시가 있다면 남해에는 청산도 고등어 파시가 있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바다 위의 시장, 파시(波市)는 원래 어선과 상선들이 어류와 생활용품을 서로 사고파는 바다 위 공간을 일컬었다. 하지만 어선과 상선이 많아지고 어획량이 늘어나면서 시장이 차츰 어장 근처의 섬이나 포구 등으로 옮겨간 것이다. 완도군 보길도 출신의 시인 강제윤에 따르면 청산도 고등어 파시는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부터 시작됐다. 해마다 6월부터 8월까지 고등어 군단이 몰려들면 도청리 포구에 파시가 섰고, 부산이나 일본의 대형선단과 소형 어선 수백 척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당시 청산도 술집에는 조선 기생뿐만 아니라 일본 게이샤들까지 있었다고 한다. 일제 패망 후에도 계속되던 고등어 파시는 1960년대 중반 고등어가 고갈되면서 막을 내렸지만, 삼치들이 대신 몰려오면서 삼치 파시가 다시 맥을 이었다. 1973년 청산도 인구는 1만3500명이나 됐다고 한다. 하지만 삼치 역시 남획으로 씨가 말랐고, 1980년대 중반 청산도 파시는 전설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물고기떼와 함께 어선도, 사람도 떠나가 버렸다. 현재 인구가 2300여명으로 줄어든 청산도는 다시 한적한 섬이 됐다. 이제 그 한적함이 역설적으로 관광객을 끌어 모은다.

◇ 뭍과 물의 소출과 섬에 깃든 식생
슬로길 1, 2코스는 청산도의 서남쪽 끝에 장화 모양으로 툭 튀어나온 화랑포의 해안선을 따라서 한 바퀴 돌게 돼 있다. 슬로길 해설과 안내를 하는 청산도 백련암 도현 스님은 “이 일대가 원래는 청보리 밭이었는데 농협에서 수매를 끊자 유채 밭으로 바꿨다”면서 “소를 예전만큼 안 키우니까 사료재배용 청보리 밭이 사라져 간다”고 말했다. 유채 밭은 일종의 경관농업이지만, 유채씨를 수확해서 기름을 짜기도 한다. 까마귀쪽나무, 해송, 배롱나무. 정금나무, 콩짜개덩굴, 예덕나무, 우슬, 사방오리. 지난 계절 꽃의 흔적을 달고 있는 수국 등이 길 옆을 장식하고 있다. 사스레피나무는 앙증맞은 하얀 꽃이 막 피려고 하는 참이다. 꽃에서 특유의 지린내가 약간씩 나기 때문에 탐방객들은 ‘누가 탐방로에 오줌을 많이 누나요’라고 종종 질문한다고 한다.
날씨가 좋아서 다도해의 섬들이 다 보인다. 해안선에서 제법 떨어진 곳의 김 양식장에서는 배가 김을 수확하고 있다. 화랑포 갯돌밭과 화랑포 전망대를 지나 새땅끝에 도착했다. 해남의 땅끝과 구분하려고 새땅끝이라고 했을 것이다. 탐방로 옆으로 심어둔 나무들은 매화, 조팝나무, 굴거리나무, 돈나무, 흰말채나무, 후피향나무, 산딸나무, 다정큼나무 등이다. 바다 반대편으로는 보적산, 범바위, 말탄바위 등 청산도의 힘찬 근육들이 뻗어 있는 것이 보인다. 태풍이 닥칠 때의 충격으로 고사목이 된 해송들이 보이지만, 초봄의 탐방로는 따사로운 햇살과 다도해 훈풍 덕에 아늑하게 느껴진다.
5.7㎞ 정도를 걸으니 1구간이 끝나고 2구간 사랑길이 시작되는 연애바위 입구다. 해안절벽길이라서 다소 아슬아슬한 느낌도 늘고 해안절경의 운치를 즐길 수도 있다. 이곳 탐방로 옆 안전로프에도 어김없이 사랑의 열쇄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30여 가구가 사는 섬인 여서도가 보인다. 청산도 본도에은 주민 2300여명이 살고, 주변 유인도 5개를 합친 청산면 인구가 2600명 쯤 된다. 농업을 위주로 하는 섬이지만, 해변에서는 전복을 양식하기도 한다. 섬 동쪽은 주로 농업, 서쪽은 어업과 상업에 주로 종사한다.

◇ 속도가 놓아버린 슬로시티의 여유
겨우내 한적했던 슬로시티 청산도는 그러나 4월이 되기 무섭게 ‘퀵퀵 시티’로 탈바꿈한다고 한다. 청산면에 따르면 성수기 관광객은 많게는 하루 1만 명이 들이닥친다. 섬 인구의 4배 이상이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청산분소 김성태 소장은 “원래 걸어서 완주하려면 2박3일 걸리는 ‘슬로길’이 관광버스나 승용차로 하루나 반나절 만에 일주하는 코스가 돼 버린다”고 말했다. 걷는 길 말고 도로를 따라 걷는 경우에도 하루면 충분히 일주한다. 관광객들이 섬 주민들의 소득을 높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성수기일수록 당일치기 손님이 대부분이어서 1인당 섬에서 쓰고 가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쓰는 돈 대부분은 사람과 차량의 배 삯이다. 청산도까지 카페리여객선 운임은 왕복 1만5400원. 차량 운임은 중형승용차 기준 왕복 5만원으로 좀 비싼 편이다. 결국 여객선사만 큰돈을 번다.
그래도 청산도는 여러 모로 사정이 좋은 편이다. 지난 2000년 완도와 연륙된 신지도는 연륙이후 인구도, 경제활동도 줄었다. 유명한 명사십리 해수욕장은 모래 유실로 유명무실해졌고, 관광객들은 대교 건설 후 신지도에서 묵지 않고 승용차로 쓰레기만 실어 나른다. 결국 완도읍내 식당과 마트들만 연륙교의 덕을 보고 있다. 물론 섬 주민 가운데서도 땅값 상승으로 득을 본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족자원이 전체적으로 줄어든 요즘 섬의 경기는 전복 양식을 하느냐, 그것이 잘 되느냐가 주로 좌우한다. 다도해에서도 전복 양식이 잘 되는 보길도, 청산도 등이 비교적 부자 섬인 까닭이다.

◇ 섬이 기억하는 과거, 섬이 기대하는 미래
날씨와 전망이 좋으니 ‘슬로길’을 더 걷기보다는 청산도의 정상인 매봉산(해발 385m)으로 향하기로 했다. 슬로길 7코스의 초입에 있는 국립공원 명품마을인 상서리 돌담길에서 상서리재로 올라갔다. 후박나무 숲길을 따라 1.5㎞ 오르니 능선안부에 도착했다. 거기서부터 남쪽으로 약 900m를 걸으면 매봉산 정상이다. 해안선을 바라보는 능선에서 동쪽으로 생일도, 북쪽으로 신지도, 고금도 등이 보인다. 남쪽으로 여서도가 정면에 보이고, 추자도는 가물가물하다. 서쪽으로 노화·보길도, 및 소안도가 우뚝 서 있다.
청산도에는 의외로 논과 밭이 많다. 그 중에서도 제6코스 구들장 길을 따라 펼쳐진 구들장논은 농토와 물이 부족한 섬에서 척박한 땅을 논으로 일군 섬사람들의 몸부림에 가까운 노고를 말해준다. 구들장논은 논바닥에 돌을 구들처럼 깔고, 그 위에 흙을 부어 만든 논이다. 물이 곧 바다로 흘러가 버리는 화산지대의 특성상 논농사가 어려운 점을 극복하기 위해 물이 빠지지 않는 곳을 찾아 구들장 방식으로 논을 만들고, 연속구조로 축대와 수로를 연결해 물을 공급했다. 역시 화산지대인 제주도에서도 하지 못했던 방식이다. 구들장 논은 2013년 1월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호로 지정됐고, 2014년 4월 국내 처음으로 세계농업기구(FAO)의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됐다.
청산도는 거문도와 여러 모로 비슷하다. 일제 강점기와 1970년대까지 각각 갈치와 고등어 그리고 삼치잡이로 영화를 누렸던 것이 그렇고, 그 이후 고기가 안 잡히면서 쇠락한 것도 그렇다. 모두가 사람들의 욕심이 과해서 지속가능한 어업을 하지 못했던 탓이다. 섬사람들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그렇게 살았다. 지금은 전복과 해조류 양식을 하는 일부 섬이 윤택해졌다. 그렇지만 전남개발연구원 김준 박사는 전복 양식도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다. 김 박사는 “보길도에서도 전복 종패를 너무 조밀하게 뿌려놓고 있기 때문에 다시마, 미역 사료가 항로를 막고 배설물이 해저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섬들의 부침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완도=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 사진=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
[취재협조=국립공원관리공단 다도해해상국립공원사무소]

[사진설명](위에서부터 순서대로)
- 영화 ‘서편제’의 촬영지였던 청산도 돌담길 / 봄볕 속에 한층 더 알록달록한 마을 지붕 / ‘쉼’을 형상화한 쉼표 모양의 해안가 조형물 / 봄까치꽃(큰개불알풀) / 황조롱이 / 탐방로 변 돌담길 / 다랭이논 / 전복 가두리양식장과 김 양식장 / 구들장논 수구(水口) / 청산도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