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 별세] 작은 나라 큰 지도자… ‘강력한 리더십’ 기적 일궜다

입력 2015-03-23 18:01 수정 2015-03-23 18:10

23일 별세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는 1959년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에서 자치령으로 승격했던 시절부터 자치정부 총리를 맡았다. 이어 싱가포르가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초대총리를 역임하며 1990년까지 싱가포르를 이끌었다. 그는 자치정부 시절을 포함한 총 31년의 재임기간 동안 부존자원이 없는 작은 도시국가(692.7㎢·서울보다 약간 큰 규모)인 싱가포르를 세계적인 금융 및 물류 중심지로 탈바꿈시켜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부상하는데 핵심 역할을 했다. 경제적 번영과 함께 정치·사회적 안정을 달성한 점도 그의 리더십을 돋보이게 했다.

그러나 리 전 총리는 그런 기적을 일구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보다 권위적 통치를 중시했다. 싱가포르가 세계적으로 깨끗하고 범죄율 낮은 도시가 된 배경에는 무거운 벌금, 태형 등 강력한 처벌이 자리잡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아시아의 히틀러’로 불리기도 했으며, 그의 통치방식은 ‘온건한 독재’, ‘가부장적 통치’로 평가받았다. 그는 자신이 독재자라는 비난에 대해 개발이 뒤진 아시아가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아시아적 가치’를 내세웠다.

리 전 총리는 “나는 늘 (권력 쟁취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마키아벨리가 옳다고 믿었다” “여론조사를 해보라. 진정 국민의 바람이 무엇인가. 과연 원하는 기사를 쓸 권리인가? 그들이 원하는 것은 주택과 의료, 일자리와 학교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언론의 자유’를 경시하는 태도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리 전 총리는 생전 이웃을 배려해 살던 집을 헐으라는 유언을 남겨놓기도 했다.

그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싱가포르 총리를 맡고 있는 리셴룽 총리와 부자지간으로 우리나라의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과 비견된다. 리 전 총리는 1979년 방한해 박 전 대통령을 만났으며 당시 그 자리에는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박 대통령이 배석해 통역을 맡기도 했다. 2000년에 낸 회고록 ‘제3세계에서 제1세계로’에서 리 전 총리는 당시 만남을 언급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한국의 성공을 위한 그의 강한 의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그가 없었다면 한국은 결코 산업화를 이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평가했다. 이 인연으로 2008년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던 박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리 전 총리 부자를 예방하기도 했다. 그는 총 4차례 방한하면서 박 전 대통령 외에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을 모두 만났다.

리 전 총리의 사망 이후 성장을 위해 사회를 엄격히 통제하는 ‘리콴유 스타일’의 싱가포르도 점차 변모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싱가포르에서는 국민의 정치 참여 확대와 언론 자유 확대 등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꾸준히 나타나고 있으며 집권 인민행동당(PAP)이 압승한 지난 2011년 총선에서도 야당 의석수는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