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드 압박 거둬들이고 AIIB 과거사 문제 집중

입력 2015-03-22 17:38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 문제를 둘러싼 한·중 간 외교 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분위기다. 우리 정부가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D)’ 가입 여부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보이자, 중국이 ‘사드 압박’을 당분간 거둬들인 모양새다.

한·중·일 외교장관회의 참석차 서울을 방문했던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21일 회의 석상과 직전 열린 한·중 양자 외교장관회담에서 ‘사드’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고 외교부 당국자가 전했다.

당초 외교가에서는 왕 부장이 이 문제를 집중 거론하리라는 예상이 많았다. 지난 16일 방한했던 류젠차오(劉建超)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가 “(사드 배치에 대해) 중국의 우려와 관심을 충분히 고려해 결정해 달라”고 한 데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마저 “한 국가가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려면 반드시 다른 국가 안전에 대한 우려와 지역의 평화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왕 부장은 AIIB 문제에 집중했다. 그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양자회담에서 한국 가입을 희망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회담 뒤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왕 부장은 “이미 한국 정부가 (AIIB 가입 문제에 대해) 진일보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밝히지 않았나”고 했다.

3국 외교장관회의에서 왕 부장의 초점은 사드 대신 과거사 문제였다. 한·중·일 외교장관들이 모두 나선 공동기자회견에서 그는 ‘정시역사 개벽미래(正視歷史 開闢未來)’라는 단어로 말문을 열었다.

이 발언은 명목상으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정권을 정조준한 것이지만, 한국도 겨냥한 압박전략이란 게 외교가의 평가다. 아베정권의 과거사 반성을 촉구하는 동시에 우리 정부의 대일 관계 개선 행보를 견제하려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2년여 간 ‘과거사 반성 없이는 관계개선은 없다’는 스탠스였던 박근혜정부는 최근 두 문제를 분리 대응하겠다는 쪽으로 전환해가고 있다. 왕 부장 발언은 이런 한국의 대일기조 전환 조짐을 차단하고 자신들 쪽에 붙잡아두려는 중국의 의도를 드러낸 셈이다.

이를 반영하듯 왕 부장은 “최근 몇 년 간 3국간 양자관계가, 특히 중·일, 한·일 관계가 역사인식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공동기자회견 무대에서 그는 “역사 문제를 적절히 처리하고…”라거나 “역사문제는 피할 수가 없다”는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기자회견 말미에는 일본의 과거사 반성을 3국 정상회의 재개의 필요조건이라고까지 했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