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평가액 2조5000억원 국내 최고가 전시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마크 로스코’ 50여점 출품

입력 2015-03-22 15:42
마크 로스코의 1970년 작품 '무제'(ⓒ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ARS, NY / SACK, Seoul)
2조5000억원. 그림의 총 평가액이다. 작품당 500억원 꼴이다. 국내 전시 사상 최고가다. 3월 23일부터 6월 28일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에서 열리는 추상 표현주의의 거장 마크 로스코(1903~1970) 전시가 그렇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1955~2011)는 세상을 떠나기 전 로스코의 작품에 심취했다. 잡스는 “복잡한 사고의 단순한 표현”이라고 말한 로스코의 철학에 공감했고 이를 애플의 디자인 철학으로 삼았다. 로스코의 작품을 통해 영감을 얻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 제목을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마크 로스코’ 전이라고 붙였다.

미국 워싱턴국립미술관이 소장한 로스코 작품 50점이 출품된다. 로스코의 작품이 이렇게 대규모로 한국 나들이를 하는 것은 처음이다. 네덜란드 헤이그 전시에 이은 순회전이다. 로스코는 일반적으로 추상주의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작가 자신은 그 틀에 얽매이기를 거부했다.

“나는 추상주의에 속하는 화가가 아니다. 나는 색채나 형태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비극, 아이러니, 관능성, 운명 같은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내 그림 앞에서 우는 사람은 내가 그것을 그릴 때 가진 것과 똑같은 종교적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잡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왜 로스코의 작품에 주목하는지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색과 면으로 구성돼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마주하면 오랜 시간 그 앞을 떠날 수 없다는 그의 작품은 명상이나 마음의 정화를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많다.

구도상으로는 복잡하지 않은 수평의 화면 분할에 색채는 한마디로 딱 꼬집어 표현하긴 어렵다. 캔버스엔 노랑, 보라, 검정, 붉은색, 흰색 등이 비친다. 많은 것을 간결하게 내포한 듯 보이는 로스코의 작품은 가깝게는 인생과 자연, 멀게는 이들을 넘어선 차원의 존재를 암시한다.

그의 작품은 절제된 구도 속에서 사색적이고 종교적이며 고요한 이미지를 안겨주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세계 가장 비싼 작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2007년 5월 뉴욕 소더비경매에서 ‘화이트센터’가 7280만 달러(한화 약 820억원), 2012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오렌지, 레드, 옐로’가 8690만 달러(한화 약 980억원)에 거래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열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평생을 보낸 로스코는 1·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겪으면서 인간의 근원적 감정, 환희·비극·파멸 등을 화폭에 담아왔다. 화면은 초기 빨강, 노랑 등 밝고 화려한 색상이 주를 이뤘으나 1950년 중반부터는 검붉은 색이나 갈색, 고동색, 검은색 등 어두워지는 경향을 띠었다.

화면은 단순하지만, 복잡한 인간 내면이 함축됐다. 수평 구도로 나눈 화면은 여러 번 덧칠, 깊이감과 강한 흡입력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빨아들인다. 특히 폭넓은 색채와 색조를 활용, 극적이고 소박하며 시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면도날로 손목의 동맥을 잘라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한 달 전, 붉은색으로 가득한 ‘무제’를 내놓기도 했다. 그의 스튜디오를 적신 피만큼이나 선명한 붉은색 작품으로 ‘피로 그린 그림’이라고도 불린다.

전시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신화의 시대’ ‘색감의 시대’ ‘황금기’ ‘벽화의 시대’ ‘부활의 시대’ 등으로 나누어 구성했다. 초기 대표작으로 구상의 형태가 보이는 ‘지하철 판타지’, 신화를 소재로 한 ‘안티고네’, 수평 구도로 화면을 분할하고 특유의 색채를 나타낸 무제(untitled) 작품들, 시그램 벽화 스케치 그리고 붉은빛으로 물든 로스코의 마지막 작품까지 전시된다. 로스코의 작품으로 벽면을 채운 미국 휴스턴 소재 로스코 채플을 일부 재현해 그의 어두운 색감의 회화 7점을 선보인다.

그림이 음악처럼 우리를 적실 수 있을까? 그림이 우리 마음에 사무쳐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의 동요를 만들 수 있을까?

철학자 강신주는 말했다. “그림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이런 정서적 효과가 가능하다는 걸 몸소 보여준 사람이 바로 마크 로스코다. 그림이 내게 날아들어 내면을 점령해버리는 느낌, 아니면 우리가 그림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느낌, 이게 바로 로스코의 그림이 가진 주술적인 힘이다. 그의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생기는 만큼 로스코를 소통표현주의자로 부르고 싶다.”

로스코의 색면 추상을 보고 “나도 그릴 수 있겠다”고 말하는 관람객이 있을 수도 있다. 물론 비슷하게 따라 그릴 수는 있다. 하지만 그림에 담겨있는 의미까지 완벽하게 모방하기는 쉽지 않다. 색과 색, 선과 선, 면과 면 사이에 존재하는 삶의 희로애락을 발견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아트투어가 되지 않을까 싶다. 관람료 일반 1만5000원, 청소년 1만원, 어린이 8000원(02-532-4407).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