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연합(한교연·대표회장 양병희 목사)은 지난 20일 “서울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명 사용을 중지해 달라”며 서울중앙지법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한교연이 가처분 신청을 제출한 것은 서울시가 1개월 넘게 한국교회의 역명 변경 요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교연은 38개 교단, 3만3000여개 교회, 690만명의 성도가 소속된 국내 최대 기독교 연합기관이다. 한교연의 법적 대응으로 봉은사역명 논란은 한층 격화될 전망이다.
◇‘역명 배제 기준’ 위반한 서울시=한교연이 법원에 ‘봉은사 역명 사용중지 가처분 신청’을 낸 이유는 7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의 ‘역명 제정 시 배제 기준’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울시지명위원회 조례 5조와 부시장방침 제440호에 명시된 ‘배제 기준’에는 ‘향후 분쟁 또는 논란이 될 수 있는 것’ ‘특정단체 및 업체의 홍보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는 명칭 등’은 배제하라고 돼 있다.
그런데도 지난해 12월 박 시장이 확정·고시한 봉은사역명은 한국교계뿐 아니라 시민사회에서 끊임없는 분쟁과 논란을 일으켰다. 한교연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장로교총연합회 한국교회언론회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등 교계 기관은 기자회견이나 성명과 논평을 통해 봉은사역명의 부적절함을 지적했다.
46개 온·오프라인 언론도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이름 놓고 갈등’ ‘지하철 9호선 역명 논란’ ‘봉은사역 이름 놓고도 대립’ ‘지하철 역 이름 전쟁’ 등의 제목으로 봉은사역 분쟁·논란 기사를 보도했다. 서울 삼성동에서 19년째 거주하고 있는 김상호(75) 한양대 연구교수는 “봉은사역명은 절대 안 된다. 삼성동 주민들의 불만이 대단하다”며 ‘봉은사 역명 변경 요청서’를 서울시에 제출하고 주민 서명까지 받았다.
지난 3일 모 포털 사이트에서 진행한 인터넷 여론조사 주제가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종교편향 논란’인데, 투표수가 116만1700건에 달했다. 불교신문 법보신문 불교방송 불교닷컴 등 불교계 언론도 봉은사역명과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다는 사실을 자세히 보도했다. 봉은사역명이 역명 제정 시 배제 기준인 ‘향후 분쟁 또는 논란이 될 수 있는 것’의 차원을 넘어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이다.
한교연은 또 봉은사역명이 ‘특정단체의 홍보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는 명칭’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봉은사 주지 원학 승려가 지난해 3월 주지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감동의 도심포교를 펼치겠다”면서 봉은사역명 제정 추진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한교연은 “서울시가 역명 제·개정 절차 및 기준에 따라 결정했다는 해명과 달리 ‘배제 기준’을 스스로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한교연 “서울시, 지하철 역명 제정 기준도 무시”=한교연은 서울시가 ‘지하철 역명 제정 기준’도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한교연은 “역명 제정 기준에는 역사와 인접하고 있는 고적, 사적 등 문화재 명칭을 사용하도록 돼 있는데 봉은사는 문화재청에 등록된 사찰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역명은 이전 우려가 없고 고유명사화 된 주요 공공 시설명을 사용하도록 돼 있는데 봉은사는 공공시설도 아니다”고 밝혔다. 한교연은 “역명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다중이용시설 또는 역의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는 지역 명칭을 사용하도록 한 원칙에도 봉은사는 해당되지 않는다”면서 “코엑스 교차로에 위치한 역사는 봉은사와 120m가량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박 시장이 역명 확정·고시권자이지만 봉은사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공정성을 상실했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한교연은 “봉은사역명을 확정·고시한 박 시장은 2007~2010년 봉은사 미래위원장과 신도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봉은사의 발전방향을 집중적으로 고민했던 인사”라며 “봉은사 주지를 만난 자리에서 주지로부터 봉은사역명으로 확정·고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긍정적 반응을 보인 사실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시장이 역명 확정·고시를 앞두고 봉은사를 방문해 역명을 지정하는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오해도 불러일으켰다”고 덧붙였다.
◇봉은사역명, 종교편향 논란까지 부추겨=한교연은 “공공시설 이름을 종교적 이름으로 명명한다는 것은 타 종교와 신도들에게 위화감을 주고 종교편향 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봉은사역명은 부적절하다”면서 “서울시민은 대중이 이용하는 지하철 역명이 특정종교의 홍보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교연은 자유롭게 실시된 인터넷 여론조사에서 코엑스역명이 봉은사역명보다 10% 포인트 앞선 점을 거론하며 봉은사역명 사용의 편파성을 지적했다.
한교연은 봉은사역명이 친일행적 논란을 불러일으켜 시민 정서에도 맞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한교연은 “봉은사는 과거 친일행위를 앞장서서 했던 대표적 공간으로 역명으로 사용하는 것이 부적절하고 서울시민과 강남구민 정서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현재 서울시는 역사성 때문에 봉은사역으로 정했다고 주장하면서도 ‘봉은사가 일제 식민통치를 정당화한 대표적 친일공간이었다’는 지적에 대해선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한교연은 오는 28일 개통되는 봉은사역을 법원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임시로 ‘929정거장’으로 해 달라고 서울중앙지법에 요구했다. 양병희 대표회장은 “박 시장이 봉은사역을 확정·고시한 것은 지난해 12월이고 삼성동 주민들이 이 사실을 안 것은 지난 1월”이라면서 “분쟁·논란 소지가 매우 큰 봉은사역명을 왜 서울시가 밀어붙이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한교연은 지난달 한기총과 공동으로 역명 변경을 강력히 촉구했다”면서 “그럼에도 서울시는 20일 이상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이번 논란의 책임은 대표적 친일사찰에 역사성을 부여하고 역명까지 붙여준 박 시장에게 있다”고 성토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한교연 '봉은사역명 사용중지 가처분 신청' 서울중앙지법에 제출, 의미는?
입력 2015-03-22 1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