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경의 동물적 본능] “석이 주인 보시오”… 로드킬 강아지, 샴푸 냄새 나는 까닭은

입력 2015-03-22 11:11 수정 2015-03-22 11:51
지난 14일 대전 충남대 동물병원 입원실에서 포메라니안 강아지 ‘석이’가 소독 치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석이는 고속도로에 유기됐다 뒤차에 치여 온 몸이 뭉개진 채 발견됐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

“그래도 사람이 먼저 살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수화기 너머 들려온 중년 남성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는 자신이 왜 기르던 반려견을 이곳, 유기동물보호소로 보내야 하는지 한참 설명했다. 이런 용건을 가진 사람들의 말투는 대개 비슷하다. 응당 받아야 할 빚이라도 있는 것 같은 태도다. “그러니까 개를 버리시겠다는 거네요.” 짧게 묻자 거친 답이 돌아왔다.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요!”

나는 낮에는 기사를 쓰고, 밤에는 버려진 동물들의 사연을 쓴다. 유기동물 입장에서 ‘날 데려가 달라’고 호소하는 슬픈 글이다. 이 일은 지난해 우연히 충남 천안유기동물보호소(국민일보 2014년 7월 1일자 참조)와 연이 닿으면서 시작했다. 보호소에 들어온 반려동물이 새 주인을 찾도록 도우려고 입양 홍보 사이트를 하나 만들었다. 별 생각 없이 사이트 관리자 연락처로 내 전화번호를 넣었다. 그리고 요즘, 저 중년 남성의 전화처럼 매일같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며 ‘인간의 민낯’을 보고 있다.


석이는 한 살배기 포메라니안 강아지다. 석이의 주인은 고속도로에 석이를 내려놓고 달아났다. 뒤따라오는 누군가 발견해 데려갈 거라 믿으며 양심의 가책을 덜었을 것이다.



뒤차는 석이를 그대로 깔고 지나갔다. “무언가 치었다”는 느낌이 분명 들었을 테지만 이미 죽었을 거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을 것이다. 석이는 뭉개진 채 발견됐다. 이경미 보호소장이 지난 4일 밤 신고자의 전화를 받고 출동해 석이를 인근 병원으로 옮겼다.

왼쪽 앞발 피부가 쓸려 나갔고 오른쪽 앞발은 뼈가 조각조각 으깨졌다. 천안에서 제법 큰 병원이었는데도 두 손을 들었다. 수의사는 안락사를 권했다. 이 보호소는 안락사를 하지 않는다. 이 소장은 “처음으로 원칙을 어겨야 하나 보다”고 했다. 그런데, 석이가 몸을 반쯤 일으키더니 입 꼬리를 올리며 씩 웃었다.

사실 웃은 건지 아파서 찡그린 건지 인간은 모른다. 하지만 개를 키워본 사람은 안다. 개가 안심할 때 살짝 짓는 미소를. 석이를 살려 보기로 했다.

온라인과 SNS에 석이의 엑스레이 사진을 올리고 도움을 청했지만 고칠 수 있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애가 탔다. 며칠이 흘렀다. 시간이 더 지나면 염증이 악화돼 자칫 자연사할 수도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8일 충남대 수의과대학에서 반가운 답신이 왔다. 이튿날 바로 입원해 긴급 수술에 들어갔다. 외과 이해범 교수가 메스를 잡았다. 석이는 밤늦게까지 이어진 수술을 잘 견뎠다. 절단도, 안락사도 없이 네 발로 살게 됐다. 면회를 가니 머리를 들이밀며 내 손을 핥았다. 편안해졌다는 표시였다. 이제 재활을 마치고 마음 맞는 가족을 찾는 일만 남았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9만7197마리가 유기됐다. 통계에 잡힌 것만 이 정도다. 버리는 수법은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보호소에 전화를 걸어 와 “맡기고 싶다”고 말하는 건 그나마 미약한 양심이 남아 있는 경우다. 휴가철을 맞아 먼 곳에 버리고 달아나기도 하고, 달리는 차에서 창밖으로 내던지기도 한다. 로드킬 신고를 받고 출동하면 샴푸 냄새가 나는 강아지인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어찌어찌 주인을 찾아 사연을 물으면 답은 늘 똑같다. “사람이 먼저 아니겠느냐”고.

지난주에는 충남의 한 국도에서 앞발이 으스러진 진돗개가 발견됐다. 목줄에 연락처가 있었다. 이 소장이 전화를 걸었다. 동네에서 큰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이 개의 주인이었다. 그는 대뜸 병원비부터 물었다. 동물 골절 치료비는 상태에 따라 200만원까지 간다. 예상 치료비를 듣자 그는 “그쪽이 구조했으니 그쪽이 데려가시라”고 했다. 그 사장님은 사람이 먼저라는 신념에 따라 오늘도 친절하게 손님을 맞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네 통의 유기 문의 전화가 걸려왔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