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 부부가 이끄는 자선단체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화석연료 관련 기업들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지적하면서 시급한 대응을 촉구해왔던 재단이 이런 투자를 해온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게이츠 재단의 세무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이 재단이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를 일으킨 영국 정유업체 BP를 비롯한 화석연료 기업에 14억 달러(약 1조5630억원)의 자금을 투자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게이츠 재단이 투자한 대상 업체는 BP 외에 미국의 에너지 개발업체 아나다르코, 브라질의 철강회사 발레 등이라고 신문은 공개했다. 아나다르코는 최근 환경오염 처리 부담금으로 50억 달러를 부과받은 바 있으며, 발레는 환경단체 ‘퍼블릭아이’의 투표에서 환경 및 인권을 저해하는 기업으로 지목된 기업이다. 최근 브라질 정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정유사 페트로브라스도 재단의 투자 목록에 있었다.
게이츠 재단은 430억달러(약 48조원)의 기금을 보유한 세계 최대 자선단체로, 이미 세계 보건 프로그램 등의 사업에 330억달러(약 37조원)를 지원한 바 있다. 게이츠 부부는 지난 1월 재단의 연례 서신에서 “기후변화의 장기적 위협이 대단히 심각해 전 세계가 당장 공격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며 탄소 발생이 없는 저렴한 대체 에너지원 개발을 촉구하기도 했다.
가디언은 지난 16일부터 게이츠 재단에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투자 철회를 요구하는 공개 청원운동을 시작했으며 이미 9만5000명이 이 청원운동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청원운동 진영은 재단에 대해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투자는 인류발전에 공헌해 재단의 활동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며 “석유와 가스, 석탄을 더 찾아내 태우는 기업에 대한 투자 활동은 도덕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게이츠 재단은 모든 투자 결정은 별도의 기금 운용사인 애셋 트러스트가 담당하고 있다면서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다만 빌 게이츠 사무실 대변인은 “기후변화 대응 운동가들의 열정을 존중한다”며 “기후변화 문제에는 다양한 견해가 있으며, 게이츠 재단 설립자는 이런 노력에 개인적으로 상당한 시간과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론자들은 각국 정부가 내건 지구온난화 방지 목표를 달성하려면 화석연료 사용을 매장량 이하로 감축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영국 UCL 대학과 과학저널 랜셋은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기후변화가 21세기 최대의 건강보건 위협요인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환경운동 앞장섰던 '게이츠 재단' 지구온난화 주범 기업들에 투자한 사실 드러나 논란
입력 2015-03-20 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