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경환 특파원의 차이나스토리] 50년 만에야 전한 고맙다는 인사

입력 2015-03-18 10:23 수정 2015-03-18 16:22

중국인들을 보면 자신의 체면이 깎이는 것은 두 눈 뜨고는 못 보는 성격입니다. 반드시 어떤 형식으로든 보복을 한다고들 합니다. 반대로 은혜를 입었을 때는 꼭 갚습니다. 이래저래 어쨌든 빚지고는 못사는 사람들 같습니다.

최근 50여년 만에 생명의 은인을 찾아 감사의 인사를 전한 62세 노인이 화제가 됐습니다. 충칭시의 충칭천보를 통해 알려진 얘깁니다. 62세의 밍더차이(明德才)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 충칭시 허촨의 푸장 강변에 살았습니다. 8~9세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친구들과 마링옌(馬嶺巖)으로 불리는 곳에서 수영을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물속에 뛰어들자마자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물이 생각보다 깊었고 급류였습니다. 허우적대기만 했는데 친구들도 속만 태우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때 비슷한 또래의 남자 아이가 물속으로 풍덩 뛰어듭니다. 밍더차이가 다리를 잡아채는 바람에 포기하고 강변으로 돌아갑니다. 물속에서 허우적대던 밍더차이는 이웃집 아저씨가 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린마산(林麻三), 애가 빠졌어! 빨리 좀 구해줘.” 린마산은 지체 없이 물 속에 뛰어듭니다. 그리고 좀 전 밍더차이를 구하다 포기했던 또래 친구도 다시 가세했습니다. 두 사람은 밍더차이를 끌고 강변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때는 내가 너무 어렸고 물에 빠져 정신이 없어 ‘고맙다’고 말하는 것을 잊었어요.” 그날의 일은 세월의 먼지 속에 묻혀져 갔지만 마음속 ‘린마산’이라는 이름은 새겨뒀습니다. 밍더차이는 커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고향 허촨을 떠납니다. 그리고 1999년 고향에 와서 한 번은 린마산을 소리쳐 불렀던 그 이웃집 아저씨를 길에서 우연히 만납니다. 아저씨는 몇 년 전 린마산을 만났다고 알려줍니다. 꼭 린마산을 찾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고향 동창회에서 ‘린마산’의 이름이 사실은 린더차오(林德超)였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린마산은 별명이었는데 그나마다 마지막 글자는 잘못 들었던 것입니다. 다시 수소문 끝에 린더차오의 집 주소를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올해 춘제(중국 설) 전에 밍더차이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옵니다. 음력 섣달 28일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을 갖고 린더차오의 집을 찾아 나섰습니다. 린더차오는 집에 없었습니다. 딸이 맞았고 밍더차이는 흥분한 상태에서 딸에게 말합니다. “50년도 전에 큰 일이 있었는데 그때 나를 구한 생명의 은인이랍니다. 몇십년 동안이나 찾았었는데….” 그때 반세기를 찾았던 생명의 은인이 나타났습니다. 밍더차이는 은인의 손을 꼭 잡고 그 때 미처 하지 못했던 “고맙다”는 말을 이제서야 할 수 있었습니다. “기억 못해요? 50년도 전에 강에서 한 사람을 구했잖아요. 그게 바로 접니다. 당신이 바로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몇십년을 찾았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린더차오의 표정은 어리둥절했습니다. 사실 올해 67세인 린더차오는 2011년 중풍으로 쓰러졌습니다. 당시에는 의식도 불분명하고 몸도 제대로 못 가눴습니다. 3년 동안의 치료 끝에 최근에서야 기억도 조금씩 돌아오고 몸도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음력 정월 초삼일(2월 21일) 밍더차이는 린더차오와 가족을 위해 특별히 연회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거듭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수십년을 찾아서 마침내 오랜 숙원을 풀었습니다. 이제 매년 꼭 한번씩 찾아뵙겠습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